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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장. 신경증적 방어기제 11가지

감정차단 (Emotional Insu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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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증적 방어기제 11가지 ⑪ 


감정차단 (Emotional Insulation) 


 



지현은 몇 달 전, 사랑하는 어머니를 갑작스럽게 잃었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주위 사람들은 그녀가 울거나 슬퍼할 거라 예상했지만, 지현은 아무런 감정을 보이지 않았다. 장례식에서도,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할 때도, 그녀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차분하게 모든 절차를 처리했다.


친구들이 걱정하며 물었다. "지현아, 괜찮아? 너무 힘들 텐데…" 지현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괜찮아. 슬프지 않아. 그저 일이니까 해야 하는 거지." 그녀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묻어나지 않았다. 지현은 어머니의 죽음을 마치 남의 일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혼자 있을 때조차, 지현은 여전히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슬픔도, 분노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감정이 마치 차단된 것처럼 무감각했다. "어쩌면 내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가 봐,"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지만, 그 속에는 깊은 공허함이 있었다.


사실 지현은 어머니의 죽음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 고통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모든 감정을 차단하고 있었다.

 



우리의 감정 체계는 때로 과부하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차단해버린다. 마치 전기 회로에 과전류가 흐를 때 차단기가 작동하는 것처럼, 감당하기 힘든 강한 감정에 직면했을 때 모든 감정을 꺼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감정차단'이라는 방어기제다.



갑작스러운 가족의 죽음 앞에서 "아무 느낌이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이나, 심각한 이별 후 "더 이상은 어떤 감정도 들지 않아"라고 하는 경우가 전형적인 예시다. 심각한 학교폭력을 겪은 학생이 마치 로봇처럼 무감정하게 변하거나, 전쟁 참전 군인이 일상적인 기쁨이나 슬픔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경정신과 의사 베셀 반 데어 콜크(Bessel van der Kolk)는 그의 저서에서 감정차단이 심각한 트라우마에 대한 뇌의 보호 반응이라고 설명한다. 최근의 뇌과학 연구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나 트라우마가 감정을 처리하는 편도체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상에서도 이러한 감정차단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점차 감정적으로 무뎌지는 직장인, 반복된 실패 후 더 이상 희망이나 기대를 갖지 않으려 하는 사람, 여러 번의 이별 경험 후 새로운 관계에서 감정 투자를 아예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그렇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많은 사람들이 불확실성과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감정을 차단하는 경향이 증가했다는 보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