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숙한 방어기제 12가지 ⑧
수동공격성 (Passive Aggression)
현지는 요즘 직장 상사와의 갈등 때문에 속이 답답했다. 상사는 늘 잔소리를 하며 그녀를 압박했지만, 현지는 그에 대놓고 반박할 용기가 없었다. 대신 그녀는 속으로 분노를 키워갔다. 어느 날, 상사가 중요한 보고서를 내달라고 했을 때, 현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금방 처리할게요."
하지만 정작 보고서를 제출해야 할 때가 되자, 현지는 "깜빡했어요"라고 변명하며 기한을 넘겨 제출했다. 상사는 화를 내며 왜 늦었냐고 물었지만, 현지는 태연하게 말했다. "죄송해요, 정말 바빠서 잊어버렸어요." 사실 그녀는 일부러 늦게 제출한 것이었다. 상사에게 직접적으로 반항하지 않고도 그를 불편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또 다른 날, 상사가 팀 회식에 늦지 말라고 당부했을 때도 현지는 일부러 시간을 지키지 않았다. "길이 너무 막혔어요"라고 변명하며 회식 자리에 늦게 도착한 그녀는, 속으로 상사의 짜증을 보며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월요일 아침, 회의실에서 팀장이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아, 또 지각이네요"라고 말한다. 팀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어색한 침묵을 지킨다. 불만이 있다면 직접 표현하는 게 좋을 텐데, 우리는 종종 이런 우회적인 방식으로 감정을 드러내곤 한다.
직장에서 "이건 제 담당이 아닌데요?"라며 슬쩍 책임을 회피하거나, 카톡 메시지를 읽고도 며칠간 답장하지 않는 것이 전형적인 수동공격성의 예시다. 가족 모임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을 때 "난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입을 삐죽거리거나, 연인과의 갈등 상황에서 "알아서 해"라며 차갑게 돌아서는 것도 마찬가지다.
분노는 누구나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우리는 종종 이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꺼린다. 대신 '시크한 반응', '미묘한 냉대', '은근한 협조 거부' 같은 우회적인 방식을 선택한다. 마치 고슴도치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시를 세우듯, 우리도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면서 자신의 불만을 표현하는 것이다.
예일대학교의 다이애나 바움린드(Diana Baumrind) 교수는 30년간의 연구를 통해 수동공격적 행동이 어린 시절 가정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감정 표현이 자유롭지 못했던 환경에서 자란 사람일수록 이러한 간접적인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최근 연구들은 SNS가 이러한 수동공격성을 더욱 강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