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숙한 방어기제 12가지 ⑨
투사적 동일시 (Projective Identification)
최근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은희는 팀원인 지호에게 불만을 품게 되었다. 지호는 침착하고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은희는 지호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꼈다. "저 사람은 분명 나를 싫어하고 나를 깔보고 있어,"라고 생각한 은희는 점점 그 감정을 키워갔다.
은희는 자신이 느끼는 불안을 지호에게 투사했고, 무의식적으로 지호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려는 듯 행동하기 시작했다. 회의에서 은희는 지호에게 계속해서 트집을 잡고, 그의 의견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지호는 처음엔 당황했지만, 점점 자신도 불편한 감정을 느끼며 은희에게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지호는 은희가 자신을 깔본다고 느꼈고, 그에 따라 차가운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그 순간 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거봐, 내가 말했잖아. 저 사람은 원래 나를 무시하고 있었어." 하지만 사실 지호의 이런 행동은 은희가 먼저 투사한 감정에 의해 촉발된 것이었다.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는 더 복잡한 형태의 투사(Projection)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타인에게 투사하고, 그 사람이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도록 무의식적으로 조종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인형극에서 인형사가 인형을 조종하는 것과 같다. 멜라니 클라인은 이를 유아의 초기 대상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메커니즘으로 보았다.
투사적 동일시는 가장 어려운 개념 중에 하나이다. 훨씬 쉽게 몇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려고 한다. 나는 투사적 동일시를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때, 이렇게 이해하면 쉽다고 말한다 “거봐? 내말이 맞지?”
[예시1]
L이라는 정치 지도자는 자신의 정책이 실패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다. 이 불안한 감정을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투사한다.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고, 여러분도 이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라며 불안을 자극한다.
처음에는 지지자들의 불안감이 크지 않았지만, 지도자가 계속해서 위기의식을 강조하자 점차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불안해하고 자신감을 잃기 시작했다. 결국 지지자들은 지도자가 말한 대로 상황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지도자는 자신이 말한 불안이 현실이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거봐 내 말이 맞지?”라고 생각하며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토닥인다.
[예시2]
A는 자청이라는 사업가를 싫어했다. 이 사람이 잘 될수록, 본인이 책을 읽지 않고 노력하지 않아서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되버린다. 자신의 삶이 무가치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 불안한 감정을 없애고 싶은 무의식이 올라온다. 따라서 “자청은 사기꾼이야. 능력이 없어서 결국 망할걸? 그리고 직원들도 이제는 자청을 싫어하고 있을걸?”라는 확고한 믿음으로 이 사람의 약점을 파고든다.
지속적으로 자청을 공격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린다. 그러던 어느 날 자청이 망해버렸다. 그리고 유언비어에 휘둘린 직원들이 자청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A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주변 사람들에게 말한다. “거봐, 내 말이 맞지? 능력도 없고 직원들도 싫어했다니까” 사실 이는 본인이 그렇게 되게끔 유도한 것인데도 이를 의식하진 못한다.
투사와 투사적 동일시의 차별점은 간단하다. 투사는 그저 ‘생각’에 그치고, 투사적 동일시는 상대방이 어떤 행위를 하도록 스스로 유도해놓고서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바람필 궁리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본인의 감정을 투영하여 적대시 하는 것은 투사이다. 투사적 동일시는 상대방이 바람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든 후에 “거봐 내말이 맞지?”라고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