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증적 방어기제 12가지 ⑤
치환 (Displacement)
현수는 오늘도 회사에서 상사에게 심한 꾸중을 들었다. 프로젝트에서 작은 실수를 했을 뿐인데, 상사는 그에게 화를 내며 크게 질책했다. 속으로는 억울하고 화가 치밀었지만, 직장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상사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온 현수는 여전히 기분이 상해 있었다. 아내가 반갑게 맞아주며 "오늘 하루 어땠어?"라고 물었을 때, 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일만 했지, 뭐. 너는 뭐 하고 있었어? 집에서 편하게 있었겠지?" 평소와는 전혀 다른 반응에 아내는 당황했지만, 현수는 멈추지 않고 불만을 쏟아냈다. 작은 일에 괜히 예민하게 굴며, 아내에게 계속 짜증을 냈다.
현수는 직장에서 느꼈던 분노를 그저 아내에게 쏟아붓고 있었던 것이다. 상사에게는 대들 수 없었기에, 그 화를 고스란히 집으로 가져와 아내에게 치환하고 있었다.
축구 경기에서 진 팀의 팬들이 거리의 쓰레기통을 발로 차거나, 시험에서 실패한 학생이 집에서 동생과 싸움을 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원래의 분노나 좌절감을 더 약한 대상에게 옮겨 표현하곤 한다.
노벨상 수상자인 콘라드 로렌츠는 자연계에서도 이러한 치환 현상이 보편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두 마리의 늑대가 싸움에서 진 늑대가 자신보다 약한 다른 동물을 공격하는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치환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방어기제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이는 마치 전기가 피뢰침을 통해 방전되는 것과 같다.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더 안전하거나 약한 대상에게 돌림으로써 일종의 감정적 해소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치환은 일시적인 해소는 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치환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상사에게 꾸중을 들은 직장인이 주차장에서 자신의 차를 발로 차거나, 연인과 다툰 후 SNS에서 전혀 관계없는 사람과 논쟁을 벌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입시 스트레스를 받는 청소년이 온라인 게임에서 과도하게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거나,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부모가 반려동물에게 짜증을 내는 것도 치환의 예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