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사람들이 상황을 망치는 법
지난 9년간 상담을 하면서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다는 걸 느낍니다.
국내 최고의 대학에서도 천재 소리를 들으며 살았던 대학생 내담자, 지금은 전문의가 된 내담자, 로스쿨생에서 5대 로펌의 변호사가 된 내담자...
이런 분들도 상담에 오면, '상대방은 정말 아쉬울 것 없는 완벽한 사람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제가 제시한 해결책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 주장합니다.
걱정하는 그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저는 많이 웃습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스스로도 남들이 보기엔 말도 안되는 객관적 가치를 지닌 사람인데, 결국 상대방에게 엄청 큰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별이라는 중대한 문제 앞에서 상대를 과대평가하는 현상입니다.
오히려 제가 걱정하는 것은, '잘난 상대방'이 아니라 '잘난 내담자'들의 지침 수행 능력이 떨어지는 현상입니다.
지능이 높고 똑똑하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 확률이 높은 게 아닙니다.
스스로 남보다 어느 정도 똑똑하다 느끼는 내담자라면, 오늘 글이 지금까지의 모든 칼럼들 중에 가장 중요한 글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전문가가 존재하는 모든 분야에 통할 수 있는 글일지 모릅니다.
세계 최고의 농구선수였던 마이클 조던이 한 때 야구에 도전했던 걸 아시나요?
성적이 어땠을까요?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피지컬을 가진 사람들 중 하나였을지 모르지만, 야구에서는 별반 뛰어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타고난 능력이 특출난 사람도
매일매일 한 분야만을 연구하는 전문가를
절대 이길 수 없다.
'똑똑한 내담자'들이 가장 상황을 빠르게 망치는 루트가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판단을 과신하는 경우입니다.
바로 '상담사가 놓치는 포인트가 있어', '나를 수많은 내담자 중 하나로 판단한거야.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한 거야' 라고 생각하며 수많은 사연으로 몇 년 이상 경력을 쌓은 상담사보다 자신의 판단을 믿고 너무나 급하게 행동을 옮깁니다.
상담사들은 '똑똑한 내담자들이 상황을 망치는 루트'를 '맷돌이 돌아간다'고 표현합니다.
맷돌을 돌리다가 손잡이가 빠져도, 맷돌은 관성에 따라 계속 돌아갑니다. '내 생각이 옳다' 는 생각은 바이러스와 같아서 아니라는 증거를 발견해도 끝없이 뇌를 회전시키고 스트레스를 줍니다.
마치 산 꼭대기에서 굴러 내려온 작은 눈송이 하나가 눈사태를 만들듯이, 이런 눈송이 하나에 자기도 모르게 뇌가 맷돌을 돌리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객관적으로 학창 시절 공부를 잘 했거나, 일에서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었다면 더더욱 이런 '맷돌 돌아가는 현상'을 경계해야 합니다.
지능이 높은 뇌는 기능성이 좋은 겁니다. 따라서 끝없이 뇌가 회전하며 일을 하게 만들고, 자기 발전에 채찍질을 가하게 만듭니다. 이 기능성 덕분에 일과 커리어에서 성공을 거두게 해 줍니다.
그러나 이 기능성이, 양날의 검으로 '잘못된 판단'에 풀가동이 되면 상황이 망쳐지기 시작합니다. 뇌는 당장 급한 문제를 풀기 위해 스위치를 켜고, 끝없이 돌아가면서 그 원료로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결과적으로 상담사, 조언자, 전문가의 판단은 잊혀지고, 급한 행동으로 상황을 망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생각의 오류들은 정말 다양합니다. 심리학에는 휴리스틱1)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지식의 저주2) 또한 이러한 생각의 오류 중 하나입니다.
성공한 CEO 중에서도 정말 멍청한 판단을 할 때가 있습니다. 언제일까요? 바로 자신이 승승장구 잘나가고 있을 때 입니다.
이 때는 자신의 판단이 무조건 맞다는 자신감에 차게 됩니다. 조심하려고 해도 전혀 조심스러워지지 않습니다.
이는 무리한 투자,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이어질 리스크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회사를 크게 휘청거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상담사인 저에게도 이는 예외가 아닙니다.
어느 날 메일함에, 재회에 성공했다는 후기가 담긴 메일이 5개 연속으로 와 있습니다. 이 경우, 상담사는 자만하게 됩니다. 자신이 모든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이러면 상담에서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되고, 자만합니다. 그리고 확률 분석도 객관적이지 못하며, 평소보다 10 - 20% 이상 높게 판단하게 됩니다.
이 심리적 오류를 발견한 이후론 아트라상에서는 상담을 하기 전에는 성공 후기를 읽지 않는 것이 원칙이 되었습니다.
우연히 읽게 되어 상담에 영향을 줄 것 같다면, 습관적으로 분석 및 확률 자체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생각합니다.
수년간의 상담을 통틀어 지능과는 별개로 가장 '현명하다' 느꼈던 내담자가 있었습니다. 그 내담자는 패닉이 왔을 때, 저에게 이런 메일을 보냈습니다.
"제가 지금 마음이 크게 흔들려서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거 같습니다. 일시적인 불안감이 심해진 것이겠지만, 궁금한 것들을 모두 적습니다. 망치기 전에 1주일간 핸드폰을 꺼 두려고 합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스스로의 판단 능력을 과신하지 않습니다. 또한, 내 판단이 잘못 흘러가고 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해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실수할 환경 자체를 없애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나는 상황 잘 모르겠어. 그래서 모르는 건 전문가에게 모두 맡길래!' 라고 생각하는 사람, 어리고 책도 많이 읽지 않아 아직은 덜 똑똑하며 흡수력 좋은 사람들이 오히려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은 어쩌면 이 차이에서 올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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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휴리스틱 : 시간이나 정보가 불충분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거나, 굳이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신속하게 사용하는 어림짐작의 기술
2) 지식의 저주 : 내가 어떤 정보를 얻고 이해하게 되면, '남도 어련히 이해하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심리적 오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