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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버린 심리학 노트

실패한 공무원 수험생을 상담으로 합격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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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수험생을 상담으로 합격시키다?




과장이 많은 제목이라 생각하고 클릭했을거라 생각한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단순히 나와의 상담만으로 한 사람이 '고시'에 합격한 건 비약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몇 해 전 나에게 상담을 받았던 내담자가 감사 편지를 보내왔다. 정말 미안하지만, 또렷히 기억나진 않았다. 상담 초창기에는 나에게 상담 받은 내담자의 닉네임만 들어도 사연이 떠올랐는데, 10,527명이 넘어버려서 어쩔 수가 없다.



여하튼, 그에게 감사 메일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노력이 기반되었으나, 전력질주 할 수 있도록 내가 마음의 문제를 풀어줬다고 말했다. 그가 그렇다는데, 뭐 제목 이렇게 쓸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합리화를 해 본다. 기억을 되짚어보다가, 그의 사연글을 다시 열어보았다. 



그는 공무원 시험을 여자친구와 함께 준비했다. 불행이 닥쳤다. 그는 시험에서 떨어지고, 여자친구는 합격하였다. 서로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그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그는 재도전을 하려 한다고 했다. 그러나, 도저히 공부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그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생각하지 않아야 하는데, 집중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그를 내내 괴롭혔다. 그는 생각이 날 때마다 산책을 다녀온다고 했다. 그러나, 생각을 지울 수 없어 하루에 몇 시간씩 산책을 하게 되었다. 



상담사로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일단은 내 전문 분야인 재회에 관해서는 단기 플랜을 짜 주었다. 물론 합격을 한다면 확률이 더 높아지겠지만, 당장에 보내야 할 문자나 SNS 관리법 및 행동 지침에 대해서 원페이퍼로 정리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손수현 |  "재회는 이 공식 따라가시면 되는데 더 큰 문제가 있네요."



내담자 |  "네? 제 재회 확률이 많이 낮은 편인가요?"



손수현 |  "부풀리지도, 줄이지도 않겠습니다. 60% 라고 생각합니다. 합격을 하면 80% 이상으로 올라가고요."



내담자 |  "아... 그런데 하루에 공부를 하는 시간이 정말 적습니다. 그녀 생각이 나면 집중이 안돼서 산책을 할 수 밖에 없어요. 생각을 어떻게 줄여야 할까요..."





나는 의도된 침묵을 했다. 침묵은 의외로 상대방이 더 이야기하게 만드는 신묘한 힘이 있다. "여보세요?" 그가 되물었다. 나는 "듣고 있습니다" 라고 짤막하게 말했다. 묘한 긴장감이 내담자와 나 사이에 형성되었다. 그는 집중할 준비가 되었을 것이다.





손수현 |  "지금 너무나 큰 문제가 있습니다."



내담자 |  "어떤 문제인지 저에게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상담사님?"



손수현 |  "도대체 왜 전 여자친구 생각을 하면 안 되는거죠?"





내가 대답하자 그는 당황하는 듯 했다.





내담자 |  "그야... 생각이 나면 자꾸 밖으로 나가게 되고 공부할 시간이 줄어드니까요."



손수현 |  "처절하게 헤어졌는데 그 사람 생각이 안 나는 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요?"



내담자 |  "하지만 생각이 너무 많이 나니까... 답답해서 어쩔 수가 없어요."



손수현 |  "확실히 말씀 드립니다. 저를 믿고 딱 일주일만 해보세요. 무조건 하루에 15시간 이상 그 여자분 생각을 하세요. 절대 줄이지 말고, 더할 수 있으면 더 하세요. 단 하나의 조건만 지키시면서요."





그는 그 '단 하나의 조건' 이 무엇인지 궁금한 듯 했다. 





손수현 |  "그 모든 생각을 책상에 앉아서 하세요. 절대 생각하는 시간 줄일 필요 없습니다. 그냥 책상 앞에 앉아서 생각하세요."





그는 생각에 잠긴 듯 했다. 나는 알 수 있다. 예전에 전설적인 상담사 '밀턴 에릭슨'의 저서에서 읽은 내용을 그대로 도입하면 되는 케이스였다. 



상담사 밀턴 에릭슨은 다이어트에 실패한 여성을 만났다. 그녀가 도저히 체중을 줄일 수 없다고 하자, 에릭슨은 '체중을 7kg 더 찌워라' 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녀는 지침을 따랐고, 체중이 늘어갈수록 '살을 빼고 싶다' 는 열망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결국 그녀는 2kg 정도를 찌우고 다이어트에 성공해버렸다.



나는 내담자의 무의식에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지금은 공부를 해야 한다' '전 여자친구 생각으로 공부 시간을 빼앗기면 안된다' 라는 문제 의식 자체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여자 친구 생각을 15시간씩 하라고 하면, 그는 오히려 '생각하면 안된다' 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성공을 거둘 수 있을거라 판단했다. 원래 악순환은 '내가 이러면 안되는데'라는 자책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맘껏 하라고 하면 숨이 트일 것이다.



그러나 '여자친구 생각이 난다' = '산책을 나간다' 로 이어지는 사고의 흐름은 막아주어야 했다. 일단 책상 앞에 있어야 책이든 뭐든 펼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15시간씩 생각을 하되' + '책상 앞에서만 해라' 라는 적절한 타협책을 제시하였다. 인간의 본성인 끝없는 생각을 없앤다는 불가능한 조언을 하지 않되, 최소한의 상황만 통제한 것이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는 합격할 사람이었다. 뭐, 지난 시험에서 아쉽게 떨어지기도 했고 사연글의 문체를 보면 기본 매우 똑똑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감사 편지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사실 합격은 오래 전에 했지만, 오랜만에 그녀의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문득 그 때의 고통이 완전히 사라진 지금이 신기하다고 했다.



내 예측이 맞았다. 그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감정을 조절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아마 내가 단기간에 재회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을 때, 그는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애프터 메일도 보내지 않았었겠지. 



상담을 하다보면 종종 내담자들중에 존경스러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이 일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