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한 소년과 희망한 소녀 이야기
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소녀를 사랑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고백했고, 그녀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루에 10통 넘는 전화를 했다. 그녀의 반응이 좋지 않다.
값비싼 선물을 했다. 그녀의 반응이 좋지 않다.
집 앞을 찾아가 몇 시간을 기다렸다. 그녀가 표정 하나 없는 얼굴로 냉랭하게 그를 맞이했다.
회사에서 힘든 일을 겪었다는 그녀를 위로하며 조언했다. 그녀는 화를 냈다.
소년은 '절망'했다. 눈물을 머금고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한 소녀가 있었다.
그는 한 소년에게 사랑을 고백 받았다. 그녀는 누구보다 기뻤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그저 '늘 지금처럼 나를 많이 사랑해주면 좋겠다' 고 '희망'했다.
그에게서 하루에 10통 넘는 전화가 온다. 그녀는 '옛날 남자친구들은 20통씩 했는데 날 별로 좋아하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에 무뚝뚝하게 전화를 받았다.
그가 값비싼 선물을 가져왔다. 그녀는 '고작 내 마음을 이런 선물 같은 걸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고 생각하고 그에게 핀잔을 주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던 중 집 앞에 있는 그를 발견했다. 누구보다 기뻤지만, '내가 너무 좋아하면 나를 만만하게 볼 수 있어' 라는 생각에 정색을 했다.
회사 일이 너무 힘들어 그에게 전화를 했다. 그가 우물쭈물하며 위로하다가 조언을 한다. '누가 조언을 하라고 했나? 위로를 하라고 했지' 라는 생각에 불쑥 화가 치밀었다.
어느 날, 소년이 이별을 말한다. 소녀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오며 생각한다.
'역시 그는 날 사랑하지 않았어'
위와 같은 일화들은 내가 재회 상담을 하면 적어도 하루에 2 - 3건은 보는 케이스들이다. 물론 소년과 소녀의 행동과 심리는 다소 과장되었으나, 실제 사연 기반의 이야기다. 편의상 소년과 소녀로 등장시켰지만, 남녀가 뒤바뀌는 케이스들도 있다.
'자존심' 이란 것은 굉장히 양날의 검이다. 어느 정도의 자존심은 상대가 나를 만만하게 볼 때 이를 막아준다. 반대로 자존심의 권한이 너무 강해지면, 상대가 충분히 사랑을 주고 있는데도 '더 행동으로 보여야 해' 라는 마음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입힌다.
자존심이 센 내담자들이 입을 모아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절 사랑하지 않은 거 같아요' 란 말이다. 물론 저프레임의 내담자들에겐 맞는 설명이지만, 보통은 상대가 충분히 좋아한 경우가 의외로 많다. 상담을 받기도 전에 자신의 상황을 속단하지 말라는 뜻이다.
여담으로, 나는 위 일화 중 소녀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여러 번 나의 실책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잃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내 사고방식은 바뀌었다.
그러니, 지금 이 글을 읽으며 '찔린다' 라고 생각하지 마시길. 내가 그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