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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관계를 맺는 사람

적을 만들지 말라 | 협력업체와 관계 맺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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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업체와 관계 맺기  

적을 만들지 말라




새로운 직원을 충원하기 위해 포털에 공고를 올리면 이력서가 수십 통씩 들어옵니다. 워낙 좁은 바닥이고 어딜 가나 하는 일도 비슷하다 보니 대부분 지원자들의 경력사항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근무했던 브랜드 네임을 중시하는 경우도 많지만 제 경험상 어떤 브랜드에서 근무했는가와 개인의 능력치는 큰 연관 관계가 없다고 봅니다.)



경력도 그렇거니와 자기소개서 내용도 다들 적절한 각색과 포장을 거쳐 예쁘게 올려놓기 때문에 그 역시도 큰 변별력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면접을 보면 어느 정도 판단이 가능하겠지만 지원자들을 모조리 면접 진행할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서류상으로 걸러내야 하는데 그때 활용하는 방법이 바로 뒷조사죠.



뒷조사라고 대단한 것은 아니고 이전에 근무했던 브랜드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나 협력업체를 통해서 평판을 듣는 것인데 신기하게도 양쪽의 평가가 갈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함께 근무했던 동료의 평가가 좋으면 협력업체 역시 좋은 평가를 내리고, 협력업체가 받은 인상이 나쁠 경우에는 동료들 역시 유사한 기억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동료들은 높게 평가하고 협력업체에서는 박한 평가를 내리는 경우도 있는데, 아무튼 위의 경우를 종합해보면 협력업체의 평가가 면접 이전에 지원자를 걸러내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직원을 채용하는데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의견을 물어볼 정도의 협력업체 담당자라면 그 담당자와 결정권자 사이에는 업무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상당히 높은 수준의 신뢰가 형성되어 있겠죠.



그런 관계라면 협력업체 담당자가 무턱대고 긍정이나 부정의 신호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고, 심사숙고해서 나온 그들의 의견은 상당히 신뢰할만합니다.



악감정을 가진 경우가 아니라면 협력업체에서 멀쩡한 사람을 나쁘게 평가 할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본사 담당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이유 없이 깎아내리거나 뒷담화를 하지 않습니다. 갑과 을의 관계를 따지지 않더라도 오더를 받기 위해 영업 활동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비즈니스 파트너를 이유 없이 악의적으로 평가해서 적으로 만들 이유는 없겠죠.



그렇다면 협력업체는 어떤 MD들을 적으로 생각하게 될까요?




협력업체의 五敵(오적)


협력업체 담당자들을 힘들게 하는 유형은 크게 다섯 가지로 편의상 MD 오적이라고 이름 지어보겠습니다. 혹시 내가 해당되지는 않는지 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1. 갑질 마왕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부류입니다. 명절 때마다 또는 발주 시기를 앞두고 은근히 또는 대놓고 무언가 요구하던 행태는 이제 거의 사라졌지만 아직 갑질의 잔재들은 남아있습니다.



협력업체 담당자들과 차라도 한잔 마시면 당연하다는 듯 계산 안 하는 사람 중에 혹시라도 어차피 그들도 법카 쓰는 건데 뭐가 대수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그런 생각은 버리기 바랍니다.



법카 쓰고 정산해서 전표 치는 업무만큼 귀찮은 업무가 또 있을까요? 내가 귀찮으면 그들도 역시 귀찮은 겁니다.



그러니 돈을 떠나서 당연히 협력업체에서 계산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세요.



4시 50분쯤 전화해서 오늘까지 답을 달라는 식으로 충분한 리드 타임 없이 피드백을 요구하거나 퇴근하다 갑자기 생각나서 전화하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퇴근은 나만 좋아하는 게 아니니까요.



까라면 까라는 식으로 일방적으로 업무를 지시하거나 오더를 무기로 무리한 요구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가 상명하복의 군대라고 생각하거나 MD가 협력업체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대단한 권력이라도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본사와 협력업체는 비즈니스 파트너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2. 게으름뱅이


물론 나는 바빠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협력업체는 본사의 늦은 피드백 하나에 스케줄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납기가 지연되어 곤란해지거나 납기 지연은 합의가 되더라도 스케줄을 전체적으로 재조정해야 하는 경우 담당자는 곤욕을 치르게 됩니다. 그럴 경우 그들에게 나는 그저 게으름뱅이로 느껴질 것입니다.



본인 선에서 단순 피드백할 수 있는 업무라면 빨리 처리하고 윗선에 보고하고 결론 내려야 할 사안이라면 바로 보고하는게 좋습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틀 이상을 넘길 정도로 바쁜 경우는 드물 겁니다. 처리 안하고 붙들고 있다가 참다못한 협력업체에서 닦달하게 만들지 마세요.





3. 결정장애


표면적인 결과는 게으름뱅이와 같지만 약간 안타까운 경우입니다. 업무의 지연이라는 결과는 같지만 게으름뱅이가 의도적으로 업무를 미루는 것이라면 결정장애는 너무 신중하게 고민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케이스인데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대개 회사 내부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예전에 함께 일하던 팀원 중에 그 회사에서만 10년 넘게 근무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오래 근무하다 보니 회사 사정과 협력업체의 상황을 워낙 속속들이 알고 있던 터라 의사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고려하는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하는 업무의 목표를 향한 직선도로가 있는데 그 길에 연결되어 있는 각종 우회로에 신경 쓰느라 정작 직선도로를 달리지 못해 너무 늦게 도착하거나 아예 도착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가고 있는 경우가 잦았죠.



회사 내부뿐 아니라 협력업체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성실하지만 주변을 힘들게 합니다. 이것저것 고려하다가 오히려 그런 고려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최악의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 것이죠.



상황을 지나치게 복잡하게 해석하는 성향이 있다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본질을 향하는 길 하나만을 보는 식으로 단순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4. 무책임한 방관자


"아, 몰라요. 그냥 팀장님이 그렇게 하래요."



상담실 파티션 너머에서 협력업체 담당자에게 어리광 부리듯 하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 몰라요. 그냥 엄마가 이렇게 하래요."라고 하는 초딩과 뭐가 다를까요?



한 칸 건너에 제가 있는 줄 모르고 했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일부러 그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직원을 호되게 혼냈습니다.



납품 단가를 네고하는 과정에서 첨예한 대립이 벌어지거나 상품에 문제가 발생해서 협력업체에 클레임을 부과하는 경우처럼 담당자 선에서 결론 내릴 수 없는 경우는 무궁무진합니다.



그럴 때는 당연히 담당자 윗선에서 결론을 내게 되는데 그 결론을 전달하는 것은 담당자의 몫이 되죠.



껄끄러운 협상의 과정에서 본인보다 상급자의 권위를 빌리거나 약간의 면피용으로 이용하는 것은 유연한 협상의 스킬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결정은 나와는 무관하고 윗선의 지시 때문에 나도 어쩔 수 없다. 그러니 그냥 따르라.'는 식으로 통보하는 태도는 무책임함 그 자체입니다.



협력업체도 그 정도의 결정이 담당 선에서 내려지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보기에 나는 그저 지시를 따를 뿐이라는 담당과 최대한 전향적으로 검토해봤지만 회사 사정상 우리가 양보할 수 있는 선은 이 정도가 최대치니 협조해달라고 부탁하는 담당이 똑같이 느껴질까요?



전자의 경우 추후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면 나 몰라라 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을 품은 상태에서 본사의 업무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협력업체는 없을 것입니다.





5. 소음공해 유발자


이기주 님은<말의 품격>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산유수처럼 말하는 사람이 주목받는 시대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번지르르한 말속에 상대에 대한 배려가 빠져 있다면, 그래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안겨준다면 그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항상 생글생글 웃으며 싹싹하고 예의 바르던 디자이너가 상담실에서 자신의 아버지뻘 되는 협력업체 사장님께 반말 투로 독한 말들을 쏟아붓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몇몇 협력업체 담당자들에게 확인해 보니 상습적으로 그런 언행을 보였고 그 후로 저는 그 친구를 투명인간 취급하게 되었죠.



경력이 쌓일수록, 직급이 올라갈수록 점점 시끄러운 소음을 뿜어대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본인의 스트레스를 감정적 갑질로 풀어보려는 시도는 자기도 모르게 시작했다가 점점 무감각해지고 결국에는 그 화살이 자신에게 향하게 되어 주변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게 됩니다.



특히 협력업체를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기지 마세요. 


남들은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는데 말 몇마디로 만 냥 빚을 지면 안되지 않을까요?



협력업체 담당자는 우리의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생생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전달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나의 커리어를 퀀텀 점프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신입 MD 시절에 만난 봉제업체 사장님을 통해 봉제의 '봉'자도 몰랐던 제가 어느 생산 담당자와 대화를 해도 막힘없는 수준의 노하우를 키울 수 있었고, 대리 시절 협력업체 막내 사원으로 만났던 직원이 국내 유수의 프로모션 업체 팀장이 되어 제가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큰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나의 오더를 받는 위치일지 모르지만 훗날 나에게 큰 기회를 제공할 수도, 나에게 찾아온 기회를 날려버릴 수도 있는 사람이 바로 협력업체 담당자인 것입니다.



그러니 관계를 길게 보고 적을 만들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