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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

[체험판] 악인론

감사일기 대신 분노일기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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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일기 대신

분노일기를 쓰다




그리고 쓰기 시작한 것이 ‘분노일기’였다. 이것이 바로 악인의 출발선이다. “번듯한 로스쿨에 들어간 친구가 너무나 부럽다.” “유명 연예인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든 간에 수많은 사람에게 주목받는 삶이 부럽다.” “성실히 학점을 쌓아 미래가 보장된 사람들이 부럽다” 등등 이들이 이렇게 열심히 사는 동안 ‘나’라는 머저리는 대체 무엇을 했는지, 그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토해내듯 쓰기 시작했다. 일기장은 순식간에 몇 장이 넘어갔다.



내면의 경쟁심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된 때는 분노일기를 쓴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인정하자. 나는 끝내주는 독일산 외제차를 원하고, 호텔급 인테리어로 치장한 고층 아파트에서 살길 바라며, 이성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는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고, 경제적 자유를 얻어 남들보다 앞서가고 싶다. 남들에게 나쁜 사람으로 보이기 싫어서 자기 밥그릇도 챙기지 못하는 위선자보다는 손가락질당하더라도 자기 욕망에 솔직한 사람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이를 깨닫자 내 삶에 초고속 엔진이 달린 것처럼 박차가 가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도 하루를 마감할 때 반드시 그날 분노한 것을 적는다. 단 이때 분노의 저격 대상은 반드시 ‘나 자신’이어야 한다. 만약 타인에게 분노를 느꼈다면 ‘왜 나는 저 사람이 성취한 것을 성취하지 못했지?’, ‘왜 나는 저 사람만큼 독하게 살지 않았지?’ 같은 문제의식을 적어야 한다. 질투와 시기에서 비롯한 타인에 대한 분노, 적개심만 적는다면 열등감덩어리로 인생을 마감할 것이다.



며칠을 쓰다 보면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마치 게임처럼 ‘이 세계에서 내 등수’가 머리 위에 둥둥 떠다니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때 나는 주변 10킬로미터 안에서 꼴찌였다. 당연한 결과였다. 등수를 확인하고 나면 끝없이 갈망하고 분노하고 노력하게 된다. 하루에 책 한 글자, 강의 1분이라도 더 듣게 된다. 분노의 약발이 떨어지면 다시 세상으로 나가서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보고 분노의 에너지를 가득 채워서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 느낀 것을 반드시 기록했다.



그렇게 분노일기를 쓰고 3개월 정도가 지나자 내 속에 잠재하던 악인의 페르소나가 해방되는 기분을 느꼈다. 그는 내 머릿 속에서 전권을 잡았다. 그러고는 쓸데없는 인간관계, 매사 적당히 만족하는 게으른 태도, 좋은 게 좋을 것이라며 문제를 회피하는 비겁한 습관 등 삶을 조용히 갉아먹는 바이러스들을 하나 하나 깨부수기 시작했다.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오직 성공’이라는 목표가 서자 내 인생에 ‘인간적이다’라는 표현으로 포장된 불필요한 감정들이 너무나 많이 개입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죄책감, 동정심, 자기위안, 위선…, 이것들 역시 차례대로 찢어 없애버렸다.



감사일기의 효용성을 완전히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긍정적인 에너지로 인생을 바꾸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감사일기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 노력하다가 가끔 힘이 들 때 에너지를 얻고 자신감을 찾는 도구가 아니라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만 기록하는 도구로 감사일기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나는 감사일기라는 도구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스스로 판단하기에 자신이 감사일기를 그저 합리화하는 도구로만 활용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기록하기를 멈춰라. 당장은 마음의 평안을 얻을지 모르지만 당신 인생에 ‘극적인 변화’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야망을 위안과 등가교환하지 마라. 굳이 감사일기를 쓰고 싶다면 그 대상은 ‘나를 둘러싼 환경’에 한정해야 한다.




·  수많은 책을 무료로 읽을 수 있는 도서관.


·  중세 시대였다면 내게 살날이 10년밖에 남지 않았겠지만, 이젠 50년 은 거뜬하게 기대할 수 있을 만큼 발전한 현대 의학.


·  앉을 의자가 있고 책을 놓을 책상이 있다는 것.


·  추울 때 보일러를 틀어 방을 데울 수 있고, 더울 때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게 해주는 현대 기술.


·  새벽까지 도서관에 처박혀 있다가 돌아올 때도 죽임을 당할 걱정이 덜한 비교적 안전한 한국의 치안.


이렇게 써놓고 보면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좌뇌로는 이런 세상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고 우뇌로는 이런 좋은 환경에서 게으르게 살고 있는 자신을 냉철하게 비판하고 분노하라. 나는 10년째 이런 식으로 분노일기를 적고 있다. 아무리 바빠도 이틀에 하루는 쓴다. 같은 나이대 남자 중 상위 1퍼센트 수준의 경제력을 손에 쥐고 나니 이제는 나보다 높은 레벨에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과 분명 같은 시간을 살아왔음에도 그들이 도달한 레벨에 진입하지 못한 스스로에게 격하게 분노한다. 그러니 당신도 지금 당장 ‘스스로에게’ 분노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