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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판] 악인론

오빠는 지난 1년간 변한 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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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지난 1년간 변한 게 뭐야?




2011년, 나는 그 1년 동안 다섯 번이나 졸업식에 가 친구들을 축하해줬다. 그중 마지막 축하 파티가 있던 날이었다. 당시 나는 취업 같은 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나의 평균 학점은 0점대였기 때문이다. ‘언젠가 졸업을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졸업이란 걸 할 수는 있을까?’를 걱정할 정도였다. 그런 고민마저도 귀찮아서 종종 잊어버리고 살았다. 위태로운 삶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친구들의 졸업식만큼은 꼬박꼬박 달려가 사진을 찍고 술을 마시며 진심을 다해 축하해 줬다.



그때 나와 어울렸던 대다수의 친구들이 나보다 나이가 몇 살 많았기 때문에 나는 늘 졸업식에서 축하를 해주는 입장이었고, 모두가 그런 상황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다만 이번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늘 나와 술을 마시며 “우린 인생 어떻게 하냐”라며 한탄하던, 마치 경쟁하듯 수업을 빠지며 대책없이 살던 친구 녀석마저 졸업을 해버린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몰라도 적어도 우리 둘에겐 졸업이란 건 아주 먼 미래의 일, 어쩌면 영영 다가오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러던 그 친구마저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학점을 관리해 졸업이라는 결승선을 통과해 버렸다. 소식을 듣자 거듭된 학사경고로 완전히 꼬여버린 나의 학점과 인생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단순했던 나는 그 순간에도 어떻게든 졸업을 할 것이라 낙관하며 그저 곧 벌어질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대한 기대감에 들떴다.



작은 꽃다발을 들고 친구를 기다렸다. 친구와 친구 부모님이 함께 왔다. 친구에게 “학사모를 쓴 모습이 썩 잘 어울려 보인다”라고 하며, “나 놔두고 졸업하니 좋냐”라고 농담을 던진 뒤 사진을 찍어줬다. 곧이어 친구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어느새 번듯하게 졸업해서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친구들이 그저 자랑스러웠다. 한 친구가 사진을 찍자고 했다. 나는 맨 뒤에 섰다. 사진에 잘 나오고 싶어서 발뒤꿈치를 한껏 들어 올리고 방긋 웃어 보였다.



찰칵!


우리는 학교 근처 단골 식당으로 이동했다. 나는 술이 너무 좋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술자리’가 좋았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순간만큼은 모든 고민이 다 잊히는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벌써 몇 년 전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기억 나냐? 횟집에서 생일 파티 하다가 갑자기 누가 술 잘 마시는지 이야기가 나와서 내기했잖아!” 나는 신이 나서 말했다. 친구들은 “그때 우리 참 이상했다”라고 이야기하며 웃어 젖혔다. 나는 더욱 들떴다. 친구들이 전부였던 그 시절엔 추억팔이만 해도 밤을 새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점차 대화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친구들은 미래를 고민했다. 일찌감치 취업한 친구들은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한탄하거나 그것을 두고 왈가왈부했다. 인사팀에 배치되었는데 적성에 잘 맞지 않아서 고민이라느니, 회사 상사가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에 안 든다느니, 나와는 사뭇 다른 세계의 이야기들이었다. 어떤 적금을 들고 있는지, 펀드는 뭐가 괜찮은지 같은 주제도 나왔다. 나는 점점 소외되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면서도 태연하게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수차례의 학사경고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대학생’이라는 신분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내겐 너무나 생소한 이야기들이었다.


오늘 졸업식의 주인공인 친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친구는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본 내 친구의 얼굴은 나와 함께 피시방에 출석 도장을 찍던 때보다 훨씬 더 진지해 보였다. 취업을 하지 못한 친구들도 모두 저마다 목표를 향해 달려 가고 있었다. 한 친구는 통역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여러 차례 도전하고 있었고, 다른 친구는 로스쿨에 들어가기 위해 학비를 벌며 과외와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수현아, 너는 목표가 뭐야?’라는 질문이 나올까 봐 두려워졌다. 술잔을 연거푸 비우면서 기분이 들뜨기를 기원했다. 술값은 취업한 친구들이 나눠 계산했다. 참 착하고 멋진 친구들이었다.


새벽 3시가 넘어 비틀비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무슨 감정인지 알 수가 없었다. 카톡, 카톡. 단톡방에 오늘 함께 찍은 사진들이 연달아 올라왔다. 기분 탓인지 모두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에서 나 혼자만 흑백으로 존재하는 듯했다. 왈칵 질투하는 마음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이내 다시 생각했다. ‘술값까지 내준 친 구들인데 얘들이 무슨 죄라고….’ 좋게 생각하니 기분이 편해졌다. 나는 침대에 드러누워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잠에 빠졌다.


다음 날, 나는 여느 때처럼 수업에 출석하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당시 한창 유행하던 ‘감사일기’라는 것을 쓰고 있었다. 처음 그 존재를 알았을 때는 속으로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에게 느끼는 질투를 우정이라는 이름의 감사로, 고삐 풀린 채 살아가는 내 삶을 ‘한 번 사는 인생 즐기며 살자’는 이름의 감사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하루를 ‘나쁜 일 없이 소소하게 행복했던 하루’라는 이름의 감사로 치부하며 연명했다. 매일 감사할 일들을 찾아내고 기록하는 과정은 즐겁고 행복했다. 아주 가끔 들려오던,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의 울림이 잦아드는 듯했다. 면죄부를 받은 기분이었다. 그때 나는 인생 최고의 도구를 얻었다고 기뻐했다. 그것이 지독한 내 인생의 눈가리개가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한 채로.


그렇게 내 삶은 순탄하게 이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 눈에만 순탄해 보였다. 인생 그래프가 밑바닥을 찍고 있는 줄도 모르고 하루하루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다. 그리고 그것을 노트에 적으며 나는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약 1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적은 감사일기는 나를 너무나도 따뜻하게 안아줬다.


최악의 인생을 살아도 내 곁에는 둘도 없는 친구들이 남아 있다는 것, 내 미래는 깜깜하지만 부모님이 공무원 연금을 받고 계시니 두 분을 부양할 부담이 없다는 것, 어쨌든 대학생이라는 허울 좋은 신분 덕에 당장 해야 할 것이 없다는 것, 나를 봐주는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 등등 내겐 감사할 일이 넘쳐흘렀다.


이때는 몰랐다. 이 감사일기가 내 발목을 채운 족쇄였다는 사실을. 나는 감사일기를 쓰는 1년 동안 조금도 발전하지 못했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안도했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하루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헤아리며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고 합리화하고 있을 뿐이었다.


운명의 그 날은 감사일기가 빼곡한 날이었다. C+로 예상했던 시험에서 B를 받은 일, 다른 모든 과목의 성적이 ‘F’였음에도 오랜만에 절친들을 만나 왁자지껄한 술자리를 즐긴 일, 돌아오는 길에 마침 토종 순대 트럭이 집 앞에 와 있어서 행복한 야식을 먹을 수 있었던 일. 흐뭇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려던 찰나 여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늘 만나던 장소에서 잠깐 보자고 했다. 서로의 자취방이 5분 거리에 있으니 중간에서 만나자는 이야기였다.


평소와는 다르게 표정 하나 없는 얼굴로 나를 맞이한 여자친구는 다짜고짜 말했다.



“오빠는 지난 1년간 변한 게 뭐야?”


“처음엔 늘 긍정적이고 구김 없는 오빠의 모습이 편했어. 그런데 이제는 좀 지치네. 대책 없는 그 낙천주의가 말이야.”


“….”


“1년간 오빠는 인생에서 나아진 게 있어? 있다면 하나만이라도 말해줄래?”


“….”


“그만하자.”


그녀가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우리는 1주년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헤어졌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나는 그저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여기며 살았을 뿐인데… 뭐지?’



모레면 함께 1주년 기념 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사실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여자친구가 떠나간 자리에서 그대로 한참을 넋을 놓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나자 마음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분노였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1년간 나는 어설프게 자기위로만 했고, 노력하는 데 따르는 스트레스를 ‘워라밸’을 명분으로 삼아 회피했다. 경쟁에서 뒤처져도 ‘이럴 때일수록 먼저 축하해주는 게 멋진 사람이야!’라는 말도 안 되는 합리화로 내 내면의 ‘너는 뭐하니?’라는 날카로운 비난을 애써 외면했다.


그 순간 지금까지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내 삶의 근간을 지탱했던 ‘감사하는 삶’이라는 세계관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잔인하리만큼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이다. 무언가에 씐 것처럼 집으로 달려가 감사일기를 펼쳤다. 이제야 제대로 보였다. 내 인생의 소중한 동반자였던 감사일기는 못난 사람의 못난 합리화 노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몇 달 전에 쓴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걱정하지 말고

오늘 하루 행복하게 살자!

모닝커피가 맛있는 하루였잖아.



역겨웠다. 아무리 20대 초반이라지만 이 따위 일기를 써 놓은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워서 쥐구멍에 들어가 숨고 싶은 기분 이었다. 이 문장이 얼마나 순진해 보였는지 헛웃음을 웃다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감사일기는 내 삶에서 아무것도 책임져 주지 않았다. 죽기는 뭘 죽는다는 건가? 나는 멀쩡히 살아 있었고 대학생도, 사회인도 아닌 어정쩡한 이방인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날, 나는 1년 동안 쓴 감사일기를 그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