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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

제1장. 방향성

노력해도 성과는 난다. 하지만, 1만 시간 이상을 아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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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해도 성과는 난다. 

하지만, 1만 시간 이상을 아낄 수 있다면? 



고3 이전까지 나는 시험으로 줄을 세우는 교육제도를 혐오하며 게임과 축구를 즐겼다. 그렇다고 아예 공부를 놓진 않았다. ‘만에 하나’라는 생각에 눈치 보며 공부를 했고, 중위권 근처의 성적이 나왔다. 하지만 고2 겨울방학, 한의사가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사람들의 건강을 돌볼 수 있으면서도, 돈도 많이 벌고, 가족에게 일감을 줄 수 있어 보였으며, 의사보다는 온화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느낌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대충 공부하다가, 1년 안에 평균 1등급을 맞아야 하는 고상한 목표가 세워지니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기본기’가 있는 친구들은 수업 내용을 잘 이해하고 따라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나는 기초적인 영문법도 몰랐으며, 수학, 국어 등 모든 과목의 수업을 따라가기 버거웠다. 수준이 뒤처졌기에, 기초부터 공부해야 했다. 이때 내게 필요한 것은 절대적인 공부 시간을 늘리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스톱워치를 이용해 매일 공부시간을 체크했다. 기본적으로 15시간, 많으면 17시간은 찍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 



언제 따라잡을 수 있을지는 몰랐고, 불안했다. 하지만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와 같은 말을 믿으며 나아갔다. 6월 모의고사, 9월 모의고사까지도 내 성적은 미약하게만 오를 뿐, 한의대를 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미친 스퍼트 끝에 역전을 이뤄내는 아름다운 결말’을 꿈꾸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그렇게 맞이한 대망의 수능 날, 첫 국어 시험부터 시간 조절에 실패하고 만다. 지문을 몇 번이고 읽어도 헷갈리는 기억에 몇 번이고 헤맨 것이다. 결국 10문제를 못 풀고 찍어버린 나는 모든 시험을 한숨과 함께 마무리했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1년도 안되는 시간에 무리였다. 솔직히 10년 넘게 공부 잘해온 사람들을 앞서기에는 무리였을 수도 있지’라며 합리화 했다.



수능 다음날, 곧바로 다음 수능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주변 친구들 하나 둘 대학 합격 소식이 들려왔고, 수업시간에는 영화를 보여주는 등 한바탕 전투가 끝난 뒤 주어진 휴가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지금 흔들리면 다시 마음을 잡기 어려울 것 같았기에, 부러움보다는 결연한 마음이 컸다. 스스로가 부족함을 인정하고, 조용히 다음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1월 즈음부터는 재수 종합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달 만에 관뒀다. 수업시간 40분 내내 농담만 하다가 마지막 10분만 진도를 나가는 수업, 그리고 수업을 따라가기에 아직 기본이 부족하다는 것이 여전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비록 수능은 10개월이 남았더라도, 나는 하루빨리 기초를 다지고, 실력을 올려 안정감을 갖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독학 재수를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공부하는지 찾아보았다. EBS에서 다뤄준 ‘공부의 왕도’에는 1년만에 수능 역전 신화를 이뤄낸 사람들이 공부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 뿐만 아니라, 여러 커뮤니티에서는 공부법 칼럼들이 넘쳐났다. 이 중에 하나라도 내게 맞는 방법이 있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공부법을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아무리 공부법을 찾고 적용해본다 한들, 어딘가 부족함을 느꼈다. 자꾸만 ‘내게 안 맞는 옷’을 입는 느낌이었다. 이유는 알지 못했다. 아무리 찾아도 ‘딱 맞는' 방법은 없었고, 남들처럼 하지 못하는 내 머리를 자책했다. ‘이러다가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끝나는 거 아니야?’ 불안감이 엄습했다.



봄이 되자, 친구들은 SNS에 대학 생활의 즐거운 모습들을 하나 둘 올리기 시작했다. 캠퍼스 내에는 벚꽃이 피고 있었고, 떨어지는 꽃잎들을 배경으로 새롭게 사귄 대학 친구들과 웃는 친구들의 모습이 자주 올라왔다. ‘와… 부럽다. 나는 맨날 공부, 잠의 무한 반복인데…’ 자꾸 친구들과 내 현실을 비교하는 것이 반복되자, 절대 수능 끝나기 전까지 SNS를 보지 않기로 다짐했다. 어느 날 저녁, 스마트폰 전원을 끈 뒤, 부모님께 부탁드렸다. “수능 끝나기 전까지 제가 모르는 곳에 폰을 숨겨 주세요.”



폐관 수련을 시작하며, 온라인을 적극 활용했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인터넷 강의를  듣고 문제를 풀었다. 모르는 내용은 반복해서 외우며, ‘누적 복습’에 집중했다. 기출 문제를 비롯해 문제집을 풀고, 또 풀었다. 모의고사를 거듭하며 총 점수는 점점 상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목표한 ‘등급’을 달성하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뭔가 놓치고 있는 디테일’이 있다고 느껴졌지만,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한 채 수능날을 맞이했다. 결과는 평균 2.8점이었다. 



1년 전에 비해, 오르긴 했지만, 한의대에는 서류조차 내밀지 못했다. 삼수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폐관 수련을 진행한 결과, 내 의지는 전부 타버린 채 잿가루가 되었다. 1년 전보다 발전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우선은 대학에 가기로 했다. 대학을 안가는 선택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대학은 간다’가 기본 선택지였다. 어느 학과를 갈 지 고민 끝에, 향후에도 선택의 폭이 넓다고 하는 기계공학부를 선택했다.



대학 생활은 기대 이상이었다. 처음 하게 된 타지 생활은 모든 것이 새로웠다. 부모님, 동네 친구들과 떨어져 새로운 인간관계를 쌓아가며, 말투와 분위기, 동아리 문화, 기숙사 생활, 술, 조별 활동 등 흥미 넘치는 게 많았다. 공부는 ‘중간’을 유지할 정도만 했다. 남들 놀 때 같이 놀고, 벼락치기 할 때 같이 공부하며 ‘동질감’을 좇았다. 축구를 너무도 좋아했던 나는 동아리를 2개나 가입했고, 술자리를 포함하여 ‘놀자’는 자리에는 웬만하면 빠지려 하지 않았다. 이때만큼은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노는 데에 정신이 많이 팔려 있었다.



대학교 2학년까지 동아리 임원진으로 불태운 뒤, 입대 시기가 되었다. 이 시기에 번뜩 정신이 들었는데, 군대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좋을 지 걱정하기 시작했다. 군대 갔다 와서도 이 상태라면, 그대로 기계 관련 직종으로 취직 루트를 밟게 될 텐데, 그러긴 싫었다. ‘이미 사회의 흐름이 정해주는 길’을 아무런 생각없이 흘러 들어가 회사 속의 톱니바퀴로 장착되는 삶이 너무 이상했고, 그에 순응하는 것이 죽도록 싫었기 때문이다. 뭔가 다른 길이 있진 않는지 찾아야 했다.



고향 친구들에 비해 입대 시기가 늦은 편이었기에, 내 주변에는 말년 휴가를 나오는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들을 만날 때 마다 물어보았다. “너는 군대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냈어?” 그때, 한 친구가 책 한 권을 추천 해주었다. “나는 <미움 받을 용기>를 읽으면서 삶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너도 꼭 읽어보면 좋겠다. 느끼는 게 많을 것 같거든.” 확실히 이 친구는 예전에 비해 눈빛이 달라져 있었고, 자신이 만들고 싶은 미래에 대한 비전이 뚜렷하다고 느껴졌다. 책이 뭐길래 이렇게 사람을 변하게 만들었을까 궁금해졌다. ‘강력하게 추천하는 이유가 있겠지’ 막연한 믿음을 갖고, 책을 주문했다.



다행히 훈련소에는 책을 들고 갈 수 있었는데, 나는 틈만 나면 <미움 받을 용기>를 읽었다. 책을 본격적으로 읽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라는 말부터 자극적이었기에, 호기심을 원동력으로 계속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다. 반박할 수 있는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내용들에 설득되면서, 내 가치관은 점점 아들러(미움 받을 용기의 근간이 되는 심리학자)를 닮아갔다. 책을 다 읽을 즈음, 철학자와 같은 태도로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결심을 했다. 훈련소 생활이 끝나고, 나는 운전병을 양성하는 운전조교가 되었다. 



<미움 받을 용기 2>에는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다뤄진다. 이 중에는 칭찬과 야단을 치는 대신, ‘정신적 친구’로서 대등하게 교류하라는 지침이 나온다.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계급’으로 나뉜 수직 구조의 환경에 있었다. 이 시기부터 내적 갈등을 겪기 시작된다.



선임분들은 조교의 기강을 다진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교육생들에게 소리 지르고 야단을 쳐라”며 나를 다그쳤다. 하지만, 내게 더 설득력 있는 조언은 미움 받을 용기에서 제시한 ‘대등한 위치에서의 대화’였다. 백날 소리 지르고 교육 내용을 전달한다 한들, 분노가 섞인 말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폭풍’으로 취급된다는 이야기가 공감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가 나지도 않는데, 선임에게 인정 받기 위해 ‘소리지르는 나’를 연기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선임이 아무리 소리 지르고 야단 치라고 다그쳐도, 교육생들과는 ‘대등한 대화’를 선택했다. 몇 주 뒤, 선임은 내게 ‘화 안내는 답답한 폐급 x끼’이라는 애칭(?)을 붙여 주었다.



‘선임한테 쌍욕 먹는 거 말고는 생각보다 별 일 없네?’ 선임에게 미움 받을 용기를 가져버린 뒤, ‘진정한 교육자의 가르침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갑자기 수능 공부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그때 내가 어떤 가르침을 받았다면 시행착오도 없이 잘 해낼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방법(How)’에 대해서 알려주는 사람들은 많았는데, ‘이유(Why)’까지 알려주는 사람은 너무 찾기 어려웠었다. 그들에게 ‘당연한’ 것이 내 입장에서는 ‘왜 그렇게 하는데?’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생각과 동시에, 운전 교육 자료를 펼쳐보니,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좌측 밀착으로 진입한다. 어깨가 A선에 닿으면 핸들을 빠르게 좌측으로 돌린다’처럼, ‘왜(Why)’ 이렇게 해야 하는지 근거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차가 도로의 어디에 위치 하는지, 차의 속도는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공식이 무용지물 될 가능성들이 넘쳐났다. 솔직히 ‘공식’이라고 부르기도 이상했다. 분명히 교육 자료에 설명이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많은 조교들은 운전이 미숙한 교육생이 있으면 ‘감각 없는 애’, ‘공식 제대로 숙지 안 한 애’, ‘폐급’이라는 낙인을 찍고, 화를 냈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폐급이라고 낙인 찍는 것’이 너무 이상했기 때문이다. 이건 조교 한 사람의 문제라기 보다, 이 부대 운전 조교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것 같았다.



당연히 나는 계급이 낮았기에, 선임분들의 교육 태도를 바꾸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다른 방법을 고민하다가 한 가지 생각이 번뜩였다. ‘만약… 교육자료를 공식만 알려주는 게 아닌,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이유를 함께 담아 제공하면 어떨까? 아예 자료에 의도를 담아 뿌린다면, 교육하는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데?’ 선임분들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혹시, 제가 교육자료를 수정해도 되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다행히 승낙이 떨어졌고, 그때부터 개인 시간은 온전히 교육자료를 수정하는 데에 매진했다.

 


 


차체 감각을 익히는 데에 가장 중요한 코스 교육 자료부터 수정을 시작했다. 굴절, T자 코스를 연습해야 하는 이유, 어떻게 진입해야 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모든 곳에 원리를 녹이기 시작했다. 기초 운전 방법, 면허시험 코스, 도로주행 연습 등 모든 자료를 점진적으로 업데이트 했고, 교육을 진행할 때는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참여를 유도했다. 기수가 거듭되며 시험 1차 합격률은 점점 올라갔다.



어느 날, 부대 내에서 독후감 경연대회가 열렸다. 인생 처음으로 책을 읽고 삶에 녹여낸 경험을 글로 남겨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되면 포상휴가 2일까지 준다고 하니, 내게는 안 할 이유가 없었다. A4용지 2장 분량이 조건이었기에 부담도 없었다. 나는 ‘미움 받을 용기’를 읽고 난 뒤, 가치관 변화, 교육 자료와 방식을 바꾸게 된 이야기를 적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 하지도 않고 있던 보상들이 따라왔다. 독후감은 부대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되어, 군단 단위의 대회에도 자동 응모되었고, 총 7일의 휴가를 받았다. 이와 더불어, 최우수 조교 선정, 교육생에게 편지도 받았다.




 

인생 처음으로 ‘책 읽고 삶이 바뀌는 경험’을 하고 나니, 책에 대한 가치관이 변했다. ‘막막하던 내 삶에 책을 계속 적용하면 어떨까?’ 기대를 걸어도 될 것 같았다. 



이때부터 나는 개인 시간 대부분을 도서관에서 보냈다. 하지만, 나는 책을 정말 못 읽는 사람이었다. <미움 받을 용기>는 읽고 나서도 잊어버린 부분이 많아 7번 넘게 반복해서 읽었다. <미움 받을 용기 2>도 마찬가지로 6번은 넘게 다시 읽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 생각해도, 기억 상실증에 걸린 것 마냥 내 머릿속에는 남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몇 권의 책을 더 읽어본 뒤, 생각했다. ‘한 번 읽을 때 제대로 읽고,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도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품고, 독서법 책들을 찾기 시작했다. 속독을 포함하여 메모하며 읽는 독서법 등 여러 책과 유튜브 영상들을 통해 ‘내게 맞는 독서법’을 찾아보고 시도했다. ‘조금 나아진 느낌’은 있었지만, ‘됐다!’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여전히 책을 꼼꼼히 읽고 메모해도, 여러 번 반복해서 복습을 해주어야 내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수험생 시절, 여러 사람들의 공부법에서 느꼈던 ‘안 맞는 옷을 입으려는 느낌’을 다시 느꼈다.



‘책을 많이 읽다 보면 언젠가 깨닫게 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결론을 내리고, 꾸역꾸역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중 기억에 오래도록 남기고 싶은 책만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반복하지 않은 책은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에서 점차 잊혀졌다.



시간이 흘러, 인간의 뇌에 대해 다루는 진화 심리학 책, <클루지>를 읽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인간이 저지르는 오류의 원흉, 맥락 기억”이라는 주장이었다. ‘아니 맥락 기억이 도대체 어떤 녀석이길래 이렇게 디스하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공부법과 독서법을 탐구했던 내게 ‘기억’이라는 주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기억’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내가 고질적으로 겪어온 오류를 발견할 기회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직감적으로 이끌렸다.



이 책에서 알게 된 ‘기억의 비밀’은 ‘맥락 기억’이라는 인간의 기억 체계로, “뇌가 뚫리는 기억의 핵심 비밀 3가지”에서 이야기 할 주제 중 하나다. 간단하게만 소개하자면, ‘연관된 것 끼리 엮어서 기억한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쿠키’를 떠올리면, ‘부스러기’와 같은 연관된 기억이 함께 떠오른다. 



나는 이 ‘맥락 기억’을 시작으로, 내가 지금껏 해온 공부와 독서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하나씩 분해하기 시작했다. 이 ‘분해’하는 과정은 지금까지의 악습관을 끊어버리고, 새로운 독서 전략을 구축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