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혼란 주기
10점 만점을 받는 로맨스 영화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자. 초반부에 남녀가 무난히 잘될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남자는 여자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오해를 하고 좌절한다. 남자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존심 발동으로 여자를 밀어낸다.
그러나 그는 다른 여자가 생겨도 그 여자를 잊지 못한다. 결국 둘은 클라이맥스 Climax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즉, 잘 만든 로맨스 영화는 희망적으로만 스토리가 전개되지 않는다. 소개팅 역시 시간적으로 좁게 함축된 로맨스 영화일 뿐이다. 원리는 같다.
자, 우리는 지금까지 남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주었다. 다른 미숙한 여자들처럼 자존심만 부리지 않았다. 남자가 밥을 살 때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대화에 있어서 활기차게 리액션 Reaction을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한 영화는 팔리지 않는다. 이제 남자에게 어느 정도의 좌절을 선물할 차례다.
잠깐, 좌절을 선물하라고 해서 ‘공격적으로 말해라’, ‘벌떡 말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뜻이 아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미스테리 Mystery한 여자’가 되어야 한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충족과 불충족을 동시에 주어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말이 어렵다. 구체적인 예시를 보자.
예시 1
(충족)
"진짜 말씀하신 거 들어 보면 본인 일에 열정 있는 멋진 분 같아요."
(불충족)
"만약 친구였으면 정말 제 친구를 소개시켜 주고 싶은 정도예요."
해석 -
남자는 여자의 칭찬으로 감정의 롤러코스터 끝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바로 다음에 ‘친구에게 소개해 주고 싶다’는 말로 가치를 부정당한다. ‘그냥 예의상 칭찬한 것인가?’, ‘괜찮긴 하지만 내가 사귈 정도는 아니란 뜻인가?’ 그러나 여자는 이 과정에서 공격적이지 않았다. 남자는 칭찬을 들었지만, 여자의 마음을 알 수 없어서 여자의 가치를 높게 보게 된다.
예시 2
(충족)
“주선자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정말 아끼는 오빠인데 소개시켜 준 거라고.”
(불충족)
“얘기랑은 조금 다르지만 매력 있으신 거 같아요.”
해석 -
주선자가 아낀다는 말은 사회적 인정이다. 남자들은 스스로 잘났다고 믿는 동물이다. ‘나 정도면 괜찮지’란 말이 있지 않은가? 겉으론 표현하지 않겠지만 순간적으로 반드시 우월감을 느끼게 된다.
그 순간 여자가 바로 뜻 모를 말을 던진다. ‘얘기랑 다르다고? 도대체 무슨 얘기를 서로 주고받은 건데?’, ‘기대했던 바와 다르다는 뜻인가? 실물과 사진이 다르다는 건가?’, ‘내가 오늘 매력 없는 행동을 했던 건가?’. 끝없는 생각이 이어진다. 의외로 남자들도 생각이 많다.
예시 2에서는 조금 더 고차원적으로, 여자가 곧이어 ‘매력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쉽게 말하여 충족 - 불충족 - 충족을 조합한 것이다. 남자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완전히 나에게 반했다고 생각한 여자에게, 의외의 충격을 받는다. 이때부터 전세는 여자 쪽으로 넘어간다. 1보를 후퇴하자, 2보 전진이 되는 것이다.
착각하지 말자. 처음부터 공격적인 여자는 소개팅이 시작되기도 전에 남자가 쳐낸다. 수준이 높아질수록 남자들도 여자를 깐깐하게 고른다. 오히려 ‘친절함’으로 시작하여 상대를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 둔 뒤, 이처럼 혼란을 주어 “그런데 잘 모르겠네요?”의 순서가 가장 이상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