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이해하는데 30년이 걸렸다.
어릴 적 우리 아버지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면 늘 마음이 불안했다. 연립빌라 1층 한켠의 낡고 음침한 주차장 안을 슬쩍 들여다보며 아버지 차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곤 했다. 차가 보이면 죄를 지은 사람처럼 어깨를 움츠리고 집에 들어갔다. 없으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감으로 현관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갔다.
"여러분도 어린 시절, 집에 들어가기가 두려웠던 적 있나요?"
우리 집은 가난했다. 아버지는 개인택시를 운전했지만, 손님을 태우는 시간보다 술잔을 기울이는 시간이 더 길었다. 집에 날아드는 카드빚 독촉장, 가난의 그림자는 집안 곳곳에 드리워져 있었다.
당시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는 내 인생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무섭고 엄격하고 말없이 매질을 했던 사람. 아버지의 질문에만 짧게 답하는 것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소통의 방식이었다.
그렇게 보통 이하였던 환경에서 자라 어느새 나도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되었다. 다행히 사업도 잘되고, 아이에게 원하는 것을 먹이고, 입히고, 배우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게 되었다.
내 아이는 내가 자랐던 환경과는 전혀 다르게, 풍요롭게 자라고 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 키울수록 이상하게도 아버지를 존경하게 된다.
"여러분은 살면서 어느 순간 문득, 부모님을 다시 보게 된 적이 있나요?"
돌이켜보니, 아버지는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는 늘 좋은 사람이었다. 비록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단 한 번도 우리 앞에서 불평하거나, 다른 집 아이들과 비교하거나, 우리를 비난한 적이 없었다. 술에 취해 들어와도, 경제적인 압박이 심해져도, 단 한 번도 자식 앞에서 어머니와 싸우거나 욕설을 퍼부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가난 속에서도 나는 어떻게든 올바르게 자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어떨까?
나는 가난하지 않다. 아이에게 무엇이든 줄 수 있다. 그런데도 나는 아이 앞에서 아내와 싸우고, 욕설을 하고, 때로는 다른 집 아이와 비교하기도 한다. 가끔 아이를 비난하기까지 한다.
부끄러워졌다.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은 가난 속에서도 끝까지 가족을 위해 평정심을 잃지 않고 말과 행동을 아끼며 책임지는 삶이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어떤 아버지이고, 어떤 부모인가요? 가족에게 무시당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끝까지 책임을 다할 수 있나요?"
이 질문에 답하며 나 또한 오늘부터 조금 더 아버지와 닮아가려 노력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