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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

제1장. 글쓰기가 초래하는 기적

글쓰기를 백날 해도 가난하고 멍청한 사람은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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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이 이 질문을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아주 면밀한 답변을 준비했다. 당신이 앞부분을 읽었다면 아래와 같은 질문이 드는 게 당연하다.



1. 친구 중에 일기를 매일 쓰고, 책도 읽는 친구가 있는데 왜 멍청한 걸까요?

2. 교수님들은 평생 글쓰기를 하고 책을 읽음에도 왜 경제적 자유를 얻지 못했을까요?

3. 고차원적 사고를 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철학자들은 왜 가난할까요?

4. 글쓰기를 하다 보면 경제적 자유를 100% 이룰 수 있고, 초사고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건가요?

5. 문학적 글쓰기를 하는 작가들은 글을 썼는데도 왜 항상 배고프고 가난한 걸까요?




이에 대한 내 개인적인 의견을 얘기해 볼까 한다.





Q1. 친구 중에 일기를 매일 쓰고, 책도 읽는 친구가 있는데 

왜 멍청한 걸까요?


다음 장에도 나오지만, 글쓰기를 주야장천 한다고 해서 머리가 좋아지는 건 아니다. 이건 마치, 당신이 매일 하루 5km씩 달린다고 해서 '단거리 달리기 실력'이 좋아지는 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나는 배드민턴을 잘 친다. 입상도 하고, 동호인 중에서는 상위권 실력을 갖고 있다. 나와 동시에 시작한 사람들은 여전히 하위권과 중위권에서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나와 비슷한 시간을 운동하지만, 효율적으로 하지 않는다. 나는 억지로라도 잘하는 사람과 게임을 하려고 한다. 어떻게 근력을 키워서 파워를 높일지 고심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매일 2:2 게임만 한다면, 실력 증진에 한계가 있다. 실력을 높이기 위해선, 본인보다 못한 사람과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수와 해야 한다. 또한, 근력 운동을 따로 해야만 스피드나 파워가 좋아진다.



머리가 좋아지기 위해선 뇌를 풀 가동하는 초사고 상태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때 비로소 대뇌피질에 존재하는 신경세포의 수와 밀도가 높아진다. 결과적으로 사고력과 창의력 등이 높아지고 통찰력이 상승한다.



일기를 쓰는 행위는 사건을 나열할 뿐, 생각 정리를 도와주지 않는다. 창의적인 머리를 쓰는 것도 아니며,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게 만들어주지도 않는다. 2장 초사고를 위한 내적인 글쓰기에도 나오지만 일기를 쓰더라도 한 사건에 중점을 둬야 하고, 이 부분에 대해 통찰을 해야만 한다. 이 부분은 후에 자세히 서술하겠다.



책을 매일 읽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수준 낮은 자기계발 책과 문학책을 백날 읽어봐야 실력이 늘지 않는다. 고차원적인 사고를 도와주는 책에 도전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정리해야 한다. '책 읽는 본인의 모습'에 취해 겉핥기 식으로 책을 읽는다면 뇌는 자극되지 않고, 초사고 상태에 이를 수도 없다. 오히려 자신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것에 취해, 자만하게 된다. 편협해지고 자기 세계에 빠지면서 자기 객관화 능력이 상실된다. 



종종 '방어기제만 가진 자기계발러'들이 있다. 백날 낮은 수준의 자기계발서만 읽고, 아무런 시도를 하지 않는다. 자기계발서를 통해 자아는 비대해졌지만, 자의식 상처는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어려운 책은 시도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냥 ~해서 하지 않을 뿐이야'라고 반복적으로 자기합리화를 한다. 이 행위가 반복되면, 결국 '자의식 좀비'가 되어, 끊임없이 레벨이 낮은 자기계발 책이나 자기계발 영상만 틀어놓고 자위한다. 또한 사람을 만나지 않고 자기 세계에 갇히게 된다. 



배드민턴이나 테니스의 경우, 혼자 아무리 연습해 봤자 '실전 게임'을 하지 않으면 성장하지 못한다. 본인 실력이 어디 위치해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상처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실전으로 나가야 한다. 사람을 만나 비교를 하며 상처도 입고, 시도에서 실패를 하며 자기 수준을 깨달아야 한다. 상처를 받는다는 것에 겁낼 필요가 없다. 오히려 상처를 받았다는 것은 '더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방어기제로 합리화하지 않고, '나는 모자라는구나 그렇지만 코어 힘을 기르면(22전략) 결국 승리할 수밖에 없지!'라고 생각하면, 시간이 흘러 그 누구보다 앞서 있는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Q2. 교수님들은 평생 글쓰기를 하고 책을 읽음에도 왜 경제적 자유를 얻지 못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가치관이 다를 뿐이다.



펜싱 선수가 있다. 이 사람은 금메달을 목표로 한다. 이 사람이 10년 넘게 땀을 흘려왔던 이유는 모두 펜싱에서 성적을 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모든 인맥은 펜싱하는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사람의 세계관은 '금메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당신이 경제적 자유를 원하거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길 원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라고 착각해선 안 된다. 물론 펜싱 선수가 돈을 싫어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돈이 있으면 좋긴 하겠지만, 인생의  1순위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교수들은 모두 매우 명석하다. 이들이 바라는 결과는 학문적으로 인정받는 것, 삶을 살면서 결과물을 내는 것에 관심이 있다. 그래야 학자라는 세계관 내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고, 자신의 삶에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혹은 내면에서 풀리지 않는 학문적인 의문들에 더 관심이 많을 뿐이다. 세상 모든 사람의 관심사가 전부 ‘돈’인 것은 아니다. 만약 돈이 전부라면 그 많은 재벌집 자제들은 왜 자살을 했겠는가?





Q3. 고차원적 사고를 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철학자는 

왜 가난할까요?


2,800년 전, 천재 탈레스가 살았다. 탈레스는 항상 하늘을 보면서 천문학에 대해 생각하고 철학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그때 옆을 지나던 아낙네가 탈레스를 비웃으며 말했다.



“눈앞에 있는 돌덩이도 못 보는데, 보이지도 않는 하늘에 관심을 두다니 어리석군요.”



탈레스는 자신이 지금껏 가난한 이유는 단지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분개했고, 갑자기 돈을 벌기로 결심한다. 하늘을 보고 기상을 예상하여, 풍작을 예견했다. 동네에 있는 곡물 기구를 모두 사들여 독점했다. 풍작 이후 모든 사람이 탈레스에게 찾아왔고, 탈레스는 부자가 되었다. 그 이후, 그 누구도 탈레스를 가난하다고 놀리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철학과에 입학해서 대학 생활을 할 때, 항상 친구나 선배들이 걱정했다. “철학과 나와서 뭐 할래?”라는 질문은 모든 철학과 학생의 트라우마로 자리 잡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그때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해 왔어. 너는 곧 뒤졌어. 난 지금 철학에 관심이 있을 뿐이고, 돈은 안 벌고 있을 뿐이야.’ 결국 현재의 나는 그 학과 최대 아웃풋, 내 예상으론 그 학교 최고의 아웃풋 중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경험상 철학을 하는 99%의 사람들은 어리석고 방어기제가 강하다. 자기 세계에 빠져 살아가며, 누군가의 피드백에 반박으로 일관한다. 그도 그럴 것이, 플라톤도 잘 모르는 대기업 다니는 인간 따위가 자신에게 충고하는 게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점차 맛탱이가 간다.



어쨌거나, 나는 종종 철학적인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며,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초사고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고차원적인 두뇌를 사용함으로써 두뇌를 계발하여, 내가 인생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써 사용한다.



결론을 짓자면, 철학을 하는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스스로의 선택, 내적인 성찰과 지적 추구에 더 가치를 둔다.

2) 자기 세계에 갇혀서 객관화하지 못하고 어리석어진다.





Q4. 글쓰기를 하다 보면 경제적 자유를 100% 이룰 수 있고, 초사고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건가요?


서울대에 보낼 확률이 가장 높은 선생님이 있다고 가정하자. 0.1%의 사람을 가르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 선생님의 교수법은 국내 최고이다. 이 사람이 가르치면 성적이 남들보다 훨씬 빨리 오른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선생이 모든 학생을 서울대로 보내는 것은 아니다. 학생마다 지능과 소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학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를 이 선생님에게 보내려는 건 당연하다. 서울대 진학을 위해 가장 효율적인 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글쓰기를 하는 행위는 초사고에 이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자, 현명해지기 위한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즉 글쓰기가 경제적 자유를 이루는 두뇌를 갖는 데 최선의 행동이라 확신한다.



내가 한번 반문해 보겠다. 당신이 만약 자기계발 강사라고 가정하자. 누군가가 ‘성공하는 법이 뭐예요?’라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있는 범위는 아래와 같이 매우 뻔하다.



"열심히 사세요"


"저는 여행을 다니면서 깨달음을 얻었어요"


"독기를 가지세요"


"그냥 미친 듯이 하세요"


"돈이 되는 건 다 했어요"



이게 정말 성공을 위한 방법일까? 이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게다가 저런 조언은 세상 누구나 듣는 조언이다. 누구나 듣는 조언으로는 절대 앞서 나갈 수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 결국 인생을 결정하는 건 모두 본인의 몫이다. 당신이 지금까지 해 온 의사 결정의 총합이 바로 현재의 나 자신이다. 이 의사 결정력은 ‘정신의 작용’이다. 정신의 작용을 수련할 수 있는 방법은 상식적으로 책 읽기와 글쓰기밖에 없다. 물론 당신이 정말 높은 지능을 가지고, 어린 시절부터 위기와 열등감을 가지는 사건을 가졌다면, 초사고 행위 없이도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당신은 그렇게 운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운을 기대하지 말고 인생을 개척하라.




왜 글쓰기와 책 읽기는 수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강조함에도 묻혀 버리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표본이 낮고 재미없기 때문이다. 95%의 인간은 책을 읽지 않고 글을 쓰지 못한다. 상위 3%의 지능을 가진 인간만이 이 행위를 할 수 있다. 당신이 책 읽기와 글쓰기에 관심을 갖고서, 주변 인간들에게 아무리 떠들어 봤자 그들이 꿈쩍도 하지 않는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글은 안 읽는 게 아니라 못 읽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뷰나 영상에서는 ‘독서와 글쓰기를 하세요’라고 말해 봤자, 아무런 흥미를 끌지 못한 채 묻히기 일쑤다. 그보다는 별다른 노력 없이 운 좋게 성공한 스토리에 대중이 훨씬 더 반응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건 ‘3년간 꾸준히 근력 운동을 했습니다’가 아니라, ‘부모님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열심히 했고, 그 결과 금메달을 땄습니다’이다. 하나의 단일한 사건이 뭔가를 이루어 준다는 것이 ‘뇌’에서는 더 쉽게 반응한다. 모든 사람이 아무 노력 없이 로또 1등에 우연히 당첨되길 바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매일 기도하면서 로또를 긁다가 1등에 당첨됐어요"


"비트코인으로 1억을 투자하고 40억으로 불려서 은퇴했습니다"


"2년 동안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났더니 성공했어요"



이런 문장은 대중의 뇌를 자극한다. ‘와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겠는걸?’ 뇌를 자극하는 문장이라고 해서, 그게 정답이라는 뜻은 아니다. 글쓰기나 책 읽기처럼 지루하고 노력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인터뷰는 묻히거나 강조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당신은 살면서 “책 읽기, 글쓰기 없이도 성공한 예외들이 있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만날 것이다. 그들은 이런 고차원적 행위를 아예 할 수 없기 때문에 ‘책 안 읽고 유튜브 봐도 교육이 되던데 ^^’, ‘자청이 책 읽어서 잘됐다고 하는데, 내가 아는 사람은 책 한 장 안 읽고도 성공했던데 ^^’라는 합리화할 수밖에 없는 것뿐이다. 이들의 합리화에 현혹되지 말자. 단순하게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세계 최고의 부자들을 봐라. 그들은 모두 미친 독서광이자 글쓰기 마니아다(빌 게이츠, 워런 버핏,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



세계 대부호의 말을 믿을 것인지, 웹상에서 떠드는 사람의 말을 믿을 것인지는 더 이상 묻지 않겠다. 앞서 말했지만, 당신이 만약 정말 뛰어난 지능과 추진력을 타고났다면 초사고 수련 따윈 하지 않아도 된다.





Q5. 문학적 글쓰기를 하는 작가들은 글을 썼는데도 왜 항상 배고프고 가난한 걸까요?


“문학적 글쓰기를 하는 작가들 역시 가치관 때문이다”라고 답하면 식상하니, 참신한 답을 주겠다



문학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들은 내면에 집중하는 사람들이다. 내면과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을 스토리로 풀어 쓰는 사람들이다.



돈을 벌기 위해선 외부에서 얻은 정보를 생각하고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에 적용해야 한다(곧 이 훈련을 시킬 것이다). 반대로, 문학가는 본인의 세계관을 만들고 여기에 등장인물을 배치시킨다. 자신의 뇌에 입력된 정보를 최대치로 끌어올려, 인간의 심리와 통찰을 스토리로 담아 낸다. 그들이 돈을 못 버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외부 보상에 대한 관심이 적어서 지식 유입 자체가 적고, 지식을 현실에 적용하려는 성향도 없다.




✅ 경제적 자유를 얻으려는 사람들 

외부로부터 정보를 받아, 본인의 뇌로 재가공하여 현실에 적용하여 결과물(돈)을 보고 싶어 함.


✅ 문학가 

자신이 느끼는 감정, 인간에 대한 성찰에 대해 서술하고 스스로 보상을 받음. 외부로부터 받는 정보가 적고, 현실에 적용하려는 니즈도 없음.




언뜻 보면, 문학가가 열등해 보인다.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그저 가치관이 다르고 성향이 다를 뿐이다. 난 개인적으로 문학가가 더 멋있어 보인다.



MBTI 심리검사에는 E(외향성), I(내향성)라는 척도가 있다. 이 외향성과 내향성은 단순히 성격적으로 소심하냐 아니냐를 따지는 게 아니다. 외향성은 세상으로부터 보상받는 걸 중요시하는 성향을 뜻한다(돈, 존경, 관심 등). 내향적인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받는 보상보다는 내면에 더 집중한다. 일반적인 문학가들은 I(내향성) 성향이 많기 때문에 소설을 읽거나 쓰면서 ‘내적 보상’을 받으려는 경향이 많을 뿐이다.



반대로 E 성향은 현실에 내 생각을 적용하여 결과물을 얻는 걸 선호하기 때문에, 돈이나 수치, 관심으로 노력을 보상받으려고 하는 것뿐이다.



요약해서 말하면, 문학가는 외부 세계로부터의 보상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없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욕심 자체가 크지 않다. 또한, 돈에 관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관심사가 내면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경제, 과학, 비즈니스 등에 대한 관심이 적다. 인풋이 없으니 아웃풋도 없을 수밖에 없다.




윗글이 ‘글쓰기는 효과가 없다’, ‘글쓰기 평생 하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은 이유가 무엇이냐’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