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해 2년 가까이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했다(작가가 아니기도 했다). 첫 문장만 쓰면 긴 글을 수월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첫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첫 문장을 썼다 지웠다만 반복할 뿐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했다.
첫 문장을 스킵하고 두 번째 문장부터 쓰면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의 사고체계는 처음에 스파크가 튀어야 술술 풀리는 스타일이기에 이러한 조언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에게는 말문을 트이게 하는 옹알이처럼 글문을 여는 첫 문장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간의 경험이 떠올랐다. '말'에 관한 경험이었지만 '글'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 경험을 나의 첫 문장에 반영해보았고 드디어 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브런치에서 300일 가깝게 매일 글을 쓸 수 있게 된 시작점이었다.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듯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공유해보고자 한다. 크게 네 가지의 방법이 있다.
1. 핵심으로 시작하기
삼성에서 일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가 핵심부터 말하는 '두괄식'으로 보고하는 것이었다. '기-승-전-결'처럼 서서히 분위기를 고조하거나 근거를 하나둘씩 쌓아 올리다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짜잔"하며 핵심을 공개하는 '미괄식'에 익숙했던 나는 두괄식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더 정확히는 자신이 없었다. 핵심부터 말했는데 상대가 동의하지 않으면 뒷부분 내용을 듣지도 않을 것 같아서.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 아니던가? 나도 곧 '두괄식'에 익숙해졌고, 나처럼 '미괄식'으로 보고하는 신입들에게 선배들이 그러했듯 '두괄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보고를 받는 대다수의 사람은 시간이 금인 사람이기에 핵심부터 말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했다(물론 보고하는 사람에게도 시간은 금이다). 그리고 보고를 받는 대부분의 상사는 그간의 경험과 지식으로 핵심만 봐도 나머지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두괄식은 여러모로 미괄식보다 나은 방식이었다.
설령 핵심만 보고 나머지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경우에도, 두괄식은 앞으로의 전개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저는 탕수육에 있어서 무조건 부먹파입니다'라는 핵심 내용으로 시작할 경우 앞으로 어떠한 맥락에서 이야기가 전개될지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글을 쓸 때도 핵심 주장 혹은 내용부터 시작했을 때 시간이 금인 독자의 시간을 아껴줄 수 있을뿐더러, 글에 대한 이해도 또한 높일 수 있다.
2. 질문으로 시작하기
독서모임을 비롯하여 다양한 모임에서 강의 및 모임 진행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질문으로 시작할 때 사람들이 더욱 내 말에 집중을 한다는 것이었다.
질문이 사람들의 말하고자 하는 욕구와 궁금증을 자극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학창 시절에 질문 이후에는 반드시 선생님의 호명과 그에 따른 상벌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우리의 기억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질문'을 하면 사람들이 '집중'을 한다는 현상이다.
그래서 말뿐만이 아니라 글에서도 첫 문장을 질문으로 시작하는 것이 꽤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눈치채신 분도 있겠지만 이 글 또한 질문으로 시작했다. 여러분이 여기까지 글을 읽고 있다면 꽤나 성공적인 방법임이 증명된 것 아닐까?
3. 이야기 속으로 곧장 들어가기
이어령 작가는 <거시기 머시기>에서 희랍의 수사학인 '이야기 속으로'에 대해 말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시간 순서대로 혹은 전쟁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시작하지 않고 바로 아킬레스의 분노부터 시작했듯이,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이야기 속으로 지체 없이 곧장 들어가는 방식이다.
이는 1번에서 말한 '핵심으로 시작하자'와 비슷하나 다소 차이가 있다. 핵심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끌 수 있는 내용이라면 그것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퇴사는 가능한 한 빨리 하면 좋다'라는 주장의 글을 쓸 때 '화장실은 내게 남은 유일한 안식처였다'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바로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 속으로 곧장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 속으로 바로 들어가는 방식은 픽션과 논픽션 상관없이 모든 글쓰기에 유용한 방식이다.
4. 명언으로 시작하기
명언이 명언인 이유는 수많은 시간을 버텨낸 한 문장이기 때문이다. 매우 짧은 메시지로 시대를 초월하여 공감받는 내용이기에 명언일 수 있다.
그래서 첫 문장을 명언으로 시작하는 것은 실패 가능성이 매우 낮은 방법이다. 일종의 첫 문장 치트키와 같다. 그래서인지 세계 유명 작가들이 작품의 첫 문장뿐만 아니라 장(chapter)을 시작할 때 명언을 인용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만큼 널리 검증된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치트키 같은 명언도 제대로 사용해야 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어울리는 명언이어야만 명언으로서의 매력이 빛을 발할 수 있다. 맥락 없이 명언을 인용할 경우 최고급 초콜릿을 미역국에 넣고 끓이는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명언을 첫 문장으로 쓰고 싶다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적확하게 표현하는 명언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글 쓰는 방법에 대해 쓸 때마다 민망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자타공인 글로써 증명한 사람이 아니기에 이러한 나의 말에 어느 정도의 무게가 있을지 고민이기 때문이다. 다만 며칠 전까지 기어 다니던 아이가 힘차게 뛸 수 있게 되면서 느낀 기쁨을 조금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누고자 하는 선의로 봐주셨으면 한다.
나에게 도움이 되었듯 지금 첫 문장을 계속 썼다 지웠다 하고 있는 당신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쳐본다.
원문 출처: <캡선생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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