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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혼나며 배우는 게 당연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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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중앙과 지방을 오가며 공무원 생활을 했다. 가장 많이 한 고민 중 하나는 대체 보고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학창시절 논술대회에서 크고 작은 수상 경험이 있어 글쓰기에는 꽤나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보고서는 달랐다. 첫 보고서를 쓸 때, 하얀 화면 앞에서 멍하게 몇 시간을 보냈다. 첫 단어를 썼다 지우기를 골백번 반복했다. 연수 기간에 보고서 작성 강의를 들어둘 걸 하는 후회도 가득했다.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이지, 누가 그 강의를 기억하겠는가. 



결국 옆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는 좋은 보고서를 많이 보고 참고하라고 조언했다. ‘너만 봐’라며 보내준 보고서를 매일같이 읽고 참고해서 첫 보고서를 썼다. 며칠 동안 매달려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결과는 빠꾸! 팀장은 이것도 보고서라고 써왔냐고 핀잔했다. 어떤 선배는 많이 써봐야 한다고 했다. 누군가는 깨지면서 배우는 거지 그걸 어떻게 알려주냐는 말도 했다. 



중앙행정기관에 들어갔을 때, 처음으로 기획이란 걸 해봤다. 마지막 누군가의 말처럼 매일 혼이 났다. 당시 상사는 무엇이 그리 노여웠던지 들고 있던 연필로 내 보고서에 좍좍 분노의 엑스를 그리다가 A4 용지를 찢어버리기도 했다. “너 어떤 새끼한테 배웠어!”라며. 일평생 가장 많이 혼났던 때가 아닌가 싶다. 



자존감이 밑바닥을 찍고, 상사를 보면 두려움부터 솟아난다. 움츠러들고, 입이 얼어붙는다. 우물쭈물. 상사는 이를 보고 또다시 짜증이 치민다. 또 혼이 난다. 무한한 악순환이 매일 같이 반복됐다.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은 선배들, 상사들을 원망할 겨를도 없었다. 보고서는 혼나면서 배우는 거라고. 그저 내 부족을 탓했다. 매일 죽어라 썼다. 주말도 저녁도 없이 보고서, 논문, 법령, 기사를 뒤지고, 지하철 광고판을 보다가도 좋은 문구가 있으면 메모해두고. 



그렇게 1년. 안경 도수가 조금 올라갈 즈음에 새로 온 상사는 첫 보고에서 말했다. 



일 좀 하네?”



모든 행정작업이 그렇듯, 보고서 작성 역시 고도의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 아니다. 한 1년 정도 빡세게(?)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면 누구든지 양질의 보고서 프린터가 된다. 첫 타이핑에서부터 인쇄 버튼을 누르기까지 일필휘지로 명문장을 뽑아내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일단 시간이 지나면 모니터 앞에서 망설이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나는 더욱 억울하다. 1년 가까이 맨땅에 헤딩하는 와중에, 어느 누구도 “이렇게 쓰면 된다.”라고 알려주지 않았다. 암암리에 전해져오는 보고서 작성법이라든가, 시중에 나온 글쓰기 교과서를 정독했다. 



‘중요한 아이템을 선정해라’, ‘임팩트 있는 글귀로 시선을 사로잡아라’,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읽을 때는 무릎을 '탁' 친다. 아! 그렇구나! 깨달음도 심심찮게 찾아온다. 맞는 말이니까. 그런데 이게 막상 실전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나하나 짚어주면서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써라!”하고 알려주는 글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옥과도 같은 경쟁을 뚫고 겨우 들어간 직장에서 겨우 행정보고서 하나 못 썼다고 그간 겪어보지 못한 모욕을 겪지 않았으면 하니까. 나처럼 힘든 1년을 보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이지, 혼나면서 배우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잘못된 거 아닌가?



“야,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적자생존. 지금까지는 이 과정을 견뎌낸 사람만이 보고서 스킬을 손에 넣었다. 온몸이 부스러지며 보물을 손에 넣는 인디아나 존스처럼.



아무리 인생은 시련의 연속이라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만큼 가르쳐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혼나지 않고도 보고서를 배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쓰게 된 이 책은, 내 자랑도 아니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때 힘들었던 나에게 어쩌면 위안이 되었을지도 모를, 그 절실함을 나름대로 녹여본 글이다. 왜 당신들은 시간이 지나도 바뀔 줄을 모르고 혼내기만 하느냐고 외쳐보는 목소리다. 너만은 나와 같은 힘듦을 반복하지 말라고 전하는 진심 어린 조언이다. 



초보들이 보고서를 조금이라도 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몇 가지 개념과 나름의 훈련(?)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보고서를 쓸 줄 안다.’ 혹은 ‘아무리 오래 걸려도 하루 이틀 안에 끝난다.’ 하시는 분들은 이쯤에서 덮으시라. 당신을 위한 책이 아니다. 그저 어떻게든 글을 써내려는 몸부림이다. 공무원 보고서를 처음 접하는 이들을 위한 기초 지침서 정도로 받아들여 주면 좋겠다.



우선 왜 보고서가 필요한지를 이해하고, 초보자가 지켜야 할 원칙, 기본적인 훈련 방법과 정책기획보고서, 검토보고서, 행사계획서 등을 처음 쓸 때 필요한 아주 기본적인 몇 가지를 담았다. 지금 쓰려는 보고서가 어떤 보고서에 해당하는지, 어떤 글귀를 써야 하는지, 어디서 자료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어떤 단어를 써야 하는지 등을 간략하게 소개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기관마다, 맡은 업무마다 세세한 차이는 있겠으나, 초보 수준에서 논할 단계는 아니다.)



이 훈련법으로 나는 보고서를 빨리, 잘 쓰는 방법을 익혔다. ‘초보’ 여러분도, 연습을 거듭하면 적어도 생초보는 탈출할 수 있을 거다. 내가 겪은 1년여의 세월을 당신은 한 달 만에 졸업할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글은 완벽한 명문을 써내기 위한 글이 아니다. 사실 보고서 좀 쳐본 이들에게는 모두 뻔한 내용이다. 부끄럽기도 하다. 원래 글쓰기 책이라는 건 기라성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문장가의 전유물 아니겠는가. 그들이 보면 코웃음 칠지도 모르겠다. 나는 ‘잘’ 쓰는 방법은 모르니까. 



그래도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내용이 될 것을 믿는다. 내가 너무나 절실했던 그때를 지금도 누군가는 겪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