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미리보기 실행중입니다.
내 서재

제1장. 사전지식

고귀하고자 하는 본능

북마크(메모)



 




이 책의 내용들이 정말 흥미롭지만 거부감이 드는 이유.


“인간은 고귀하고자 하는 본능 때문에 인생을 망쳐 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인간은 고귀한 것을 좋아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고귀하다는 전제를 깨는 사실이 눈앞에 나타나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보인다. 역사를 봐도 그렇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란 걸 알았을 때, 사람들은 새로운 주장에 거품 물고 반대했다. 인간이 세포에서 진화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역시 거품을 물고 반대했다. 인간이 원숭이와 같은 유인원에서 진화한 것을 알았을 때, 사람들은 발작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자신들이 고귀하다고 믿도록 타고난 듯 보인다. 




하지만 똑똑한 사람들은 알고 있다. 인간이 고귀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것이 더 고귀한 행위임을. 그래서 인류는 지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사람은 언제나 기존 신념에 반하는 정보를 알게 될 때 거부감을 느낀다. 지동설이 그랬고, 진화론이 그랬다. 기존 사고의 틀을 깨는 지식을 알게 되면 대부분 사람은 일단 본능적으로 거부감부터 느낀다. 하지만 몇몇 호기심 많고 지적인 사람들은 거부감보다는 흥미를 먼저 느낀다.




인간에겐 ‘자존심’이라는 감정이 있다. 자신의 가치가 깎이는 것을 막으려는 방어 기제다. 예를 들어, 당신이 고등학생이라 가정하자. 사람들 앞에서 당신을 무시하는 A가 있다. A가 계속 놀리는데도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는다면, 사람들에게 당신은 만만한 존재가 된다. 이때 자존심이 있는 사람은 A에게 반격한다. 심리적·물리적 공격으로 만만하지 않은 사람인 걸 보이려 한다.




마찬가지로 남녀 관계에서도 상대방이 나를 무시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행동을 하면, 인간은 반사적으로 ‘나도 너 싫어’, ‘재수 없네. 이제부터 나도 무시한다’는 감정이 올라온다. 이별 통보를 당한 당사자가 매달리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 화를 내면서 상대를 비난한다. 이 또한 자신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자존심’이 발동한 것이다. 이 자존심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감정이다. 자존심은 열등감을 느끼게 만들어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좋은 사회적 평판을 유지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자존심이라는 감정, 고귀하고자 하는 본능이 인간을 망친다. ‘너는 유전자의 꼭두각시야’, ‘너는 연애를 잘하기 위해 남녀의 심리를 배워야 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반발한다. 자존심 때문에 좋은 정보를 거부하고, 불편한 감정이 올라오면 책을 덮어 버린다. 나는 그래서 《역행자》라는 책에서 자의식 해체라는 개념에 대해 강조했다.




TV에서 방영하는 토론을 본 적이 있는가? 논리가 아무리 완벽해도 반대 진영 측에서는 절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패배에 가까운 토론이었음에도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자신의 주장이 맞는다고 한다. 이 사람들은 어리석은 걸까? 아니다. 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지금까지 믿어 온 신념을 단숨에 바꾸지 않으려는 심리 기제가 있다. 나는 이 책에서 이를 ‘본능적인 거부감’이라고 말하려 한다.




퀴즈를 하나 내볼까 한다. 한 남녀가 있다. 이 남녀는 어느 날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나서 원나잇을 하게 되었다. 이 둘은 사실 남매다. 둘은 5살에 뿔뿔이 흩어졌고,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연인이 되었고 임신하게 되어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둘은 진실을 모른다.




어떤가?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가? 이 둘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만 할 것 같고, 뭔가 마음에 안 들지 않은가? 90% 이상의 사람들은 별다른 근거 없이 이 사실을 불편해하고, 심하게는 역겨워한다.




왜 불편할까? 남매는 연인 사이가 될 수 없다고 배워 왔기 때문에? 둘 사이에 돌연변이가 태어날까 봐? 불편한 감정을 겪은 사람은 어떻게든 자신의 감정에 맞는 근거를 들이밀 것이다. 하지만 사실 뭐가 맞는다는 건 없다. 당신의 유전자에 근친 행위에 대한 거부감이 새겨져 있을 뿐이다. 연인이 된 남매의 애달픈 사연은 이해하더라도, 이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이런 예는 무수히 많다. 예를 들어, 뇌 과학자들이 “인간에게 자유 의지란 없다. 그저 유전자와 환경의 조합으로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게 인간이다. 윤리, 양심이란 허상이다”라고 말한다고 가정하자. 대부분의 사람과 과학자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거부감을 느끼며 이에 반대하는 논리부터 세운다. 내가 자유 의지가 없고 유전자의 꼭두각시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150년 전, “인간의 조상은 원숭이다!”라는 말을 들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놀랐다. 인간은 신이 만든 고유한 존재인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일반인뿐만 아니라 과학자들도 이를 격렬히 반대했고,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남녀의 본능과 감정》에 나온 내용들은 과학이나 심리학을 자주 접한 사람에겐 매우 상식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처음 이 이야기를 접하는 사람에겐 ‘불편한 진실’이 들어 있다. 지금까지 부정하고 싶었던 사실에 직면하게 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설령 논리적으로 내 말이 맞는 거 같더라도, 우선 부정하며 반론할 근거부터 떠올릴 것이다.




글을 읽다가 거부감이 들고,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좋다. 아무래도 이 책은 대중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는 서적에 가까워서 반박 불가한 과학적 근거들을 책 속에 넣기에는 분량도 적고, 무엇보다 지루한 책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따라서 근거가 빈약할 수밖에 없고, 반박당할 여지도 많다. 다만, 나에겐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서 한 1만 342건의 상담과 수많은 공부를 하면서 지낸 13년의 세월이 있다. 이 능력을 이용해서 《역행자》로 종합 베스트셀러 1등 작가가 되기도 했다. 또한 80여 명의 직원을 이끌며 4개의 사업을 하는 사람도 되었으니 그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가볍게 읽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