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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

제1장. 사전지식

인간의 삶의 목적을 이해해야 남녀의 마음이 보인다

북마크(메모)



 

 




인간은 고귀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듯 보이지만 이 또한 뇌에서 그런 ‘착각’을 주는 것뿐이다. 동물의 뇌와 유전자의 역할은 ‘번식해라’, ‘생존해라’라는 명령만 수행할 뿐이다. 인간의 뇌도 사실 동물의 뇌와 같았다. 하지만 인간의 지능이 자연 선택에 의해 발달하면서, 번식 이외에 딴짓을 하기 시작했다. 진화된 뇌에선 이렇게 명령을 바꿨다.




“넌 고귀한 인간이야. 삶에는 어떤 고귀한 목적이 있어. 그러니까 어떻게든 살고, 어떻게든 일을 해. 사실 그게 다 번식과 생존을 위한 것이지만 넌 알 필요 없어. 그냥 살아. 그리고 사랑을 찾아 나서. 번식이라는 말이 거부감이 드니까, 사랑 혹은 로맨스라는 감정으로 아름답게 포장해 줄게. 그리고 생존을 위해 살아간다고 말하면, 너의 높은 지능은 싫어하니까 ‘삶의 목적’, ‘고귀한 생명’ 등의 감정을 주도록 할게.




어떤가? 위의 말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흥미로운 문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들어 보지 못한 말이라면, 이에 큰 거부감이 들면서 반대 의견을 피력할 마음이 생겼을 것이다. 고귀한 삶이 있다고 믿어 온 사람으로선 사실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장일 수 있다. 그런데 저것을 안다고 해서 인간의 삶이 변하는가? 삶이 무가치해지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성애에 대해 한 과학자가 이런 식으로 정의한다고 가정하자. 




“모성애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저 모성애가 있는 동물만이 아이를 잘 돌보고, 아이의 생존을 돕기 때문에 모성애가 있는 생명체만이 자연 선택되었을 뿐이다. 즉, 모성애를 가진 동물들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모성애라는 감정이 발달하지 않은 종은 멸종했다. 단지 그뿐이다.”




나도 앞선 과학자의 말에 동의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머니에게 갖는 감정과 감사함은 사라지는가? 내 개인적으로는 위 사실을 깨달은 뒤 마음이 바뀌었다. 오히려 이런 부모의 무한한 사랑을 이해하고, 어머니에게 더 감사해하며 어머니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확히는 어머니와의 유대관계가 더 좋아졌다. 과거에는 잔소리하고 간섭하는 어머니를 원망하거나 싫어했다. 




하지만 그 행동이 결국 어머니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였다는 걸 전적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어머니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다루는 사랑을 단순히 심리학과 생물학으로 말한다고 해서 ‘로맨스’, ‘사랑’이라는 감정이 퇴색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요리사가 재료와 관련된 이론을 알면 알수록 음식을 더욱 즐기고 잘할 수 있듯이, 사랑에 대해 잘 알게 된다면 오히려 과거보다 더 잘 사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남녀의 본능, 남녀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선 원초적인 부분을 먼저 알아야 한다.




“인간은 왜 살아가는가?” 


“인간은 어떤 목적을 갖고 태어났는가?”


“인간의 유전자에는 어떤 마음이 각인되어 있기에 우리는 이런 마

음을 갖게 되는 걸까?”




이 책을 통해 본성을 이해한다면 정답을 추측할 수 있다.


우선 그 해답을 밝히기에 앞서, 당신이 만약 지금 당장 TV를 켤 수 있다면 다큐멘터리 채널을 검색해 보아라. 동물 혹은 생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켰을 때 당신이 가장 많이 듣게 될 단어는 뭘까? ‘생존하기 위해’, ‘진화해 온’, ‘새끼를 지키기 위해서’ 등의 단어일 것이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에서도 앞의 세 단어가 매우 자주 나올 것이다. 인간도 결국 동물이기 때문이다. 원초적인 마음과 본능에 대해 다룬다면 같은 맥락으로 이야기해야만 한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갈까? 이 물음은 사실 남녀의 마음, 연애와 매우 연관이 깊다. 인간은 어떤 목적으로 수만 년간 수천 세대에 걸쳐서 현재에 이르렀을까?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심리 기저에는 ‘사랑’이 있다. 이를 생물학적 용어로 표현하면 생존과 번식이다. 생존은 사실상 번식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쉽게 말해 살아 있어야 번식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크다. 삶의 최종 목적은 번식이다. ‘번식’에 집착했던 생물체만이 후대에 자기 유전자를 전파할 수 있었고, 그 ‘종(species)’만이 현재 살아 있다. 현재 살아 있는 생명체들이 생존과 번식에 집착하는 것이 당연하다.




앞의 말이 살짝 어려울 수 있으니 쉬운 예를 들어 보겠다. 2만 년 전, 한 남성이 있었다. 이 남성은 사랑에도 관심이 없고, 성관계에도 관심이 없다. 이 남성의 유전자가 2만 년 후인 현재 살아남았을까? 아주 오래전 도태되어, 현대에 이 남성의 유전자는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즉, 유전자의 생존 확률은 0%다.




반대로 사랑에 집착하고, 자신의 아이에게 집착하고, 자신의 짝을 찾는 데 혈안이 된 남성이 있다. 이 성향을 가진 남성의 유전자는 현대까지 이어져 왔을 확률이 높다. 현대의 모든 남성은 이 ‘연애와 생존’에 미친 듯이 집착했던 남성들의 후예다. 여자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은 항상 무의식 속에 ‘사랑’이라는 주제에 미쳐 있다. 물론 앞서 말한 본능적 거부감, 고귀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본능에 따라 이를 거부하는 듯 보일 뿐이다. 어느 시대나 시와 문학을 보면 사랑을 이야기하고, 현대에도 영화와 음악, 영상에는 사랑에 관한 것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현재 살아 있는 모든 남성과 여성은 ‘사랑’에 미친 듯이 집착했으며, 후대에 유전자를 남기는 데 몰두했던 이들의 후손이다. 그래서 TV를 켜면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나오고, 카페를 가면 사람들이 이성의 마음에 대해 떠든다. 유튜브를 켰을 때 멋진 이성이 나오거나, 성적인 영상이 있다면 나도 모르게 클릭하게 되는 것도 매한가지다.




종종 댓글을 보다 보면 ‘모성애는 위대해서 저는 자식의 일이라면 목숨도 내놓을 수 있어요’라는 말이 있다. 이는 감정적으로 위대한 말이지만, 이성적으론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나는 동물 관련 영상을 정말 좋아하는데, 야생에서 부모가 자식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은 흔하다.




엄마가 아이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이를 돌봐야 자기 유전자가 후대에 전파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아이가 매번 엄마를 찾고, 사랑하며, 애정에 목말라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엄마에 대한 집착이 없는 무신경한 아이는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하거나, 건강에 위협이 있을 때 보호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이 후대에 유전자를 남길 확률은 낮고, 자연 도태될 확률은 높다.




여자는 왜 남자를 신중하게 고르고, 성관계에 보수적인가? 여자가 만약 자신을 돌봐 주지 않고, 헌신적이지 않은 남자의 아이를 밴다면? 건강하지 않은 멍청한 남자의 아이를 밴다면? 이 여성의 아이는 쉽게 병들어 죽거나, 건강하고 힘센 아이에게 번식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즉, 후대에 이 여성의 유전자가 남아 있지 않게 된다. 현대에 살아 있는 모든 여성은 대부분 유전자가 좋고, 헌신적인 남성을 까다롭게 고른 조상들의 후예다. 그러니 현대 여성은 남자를 고를 때 까다롭게 고르고 골라 성관계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자는 왜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서도 야동을 보고, 다른 여자와의 성관계를 떠올리며, 원나잇을 꿈꾸는가? 만약 선사 시대에 한 여자만 끝없이 바라보다가 버려진 남성과 헌신하면서도 틈틈이 다른 여성을 임신시키려고 노력한 남성 중 누구의 유전자가 지금까지 살아 있을까? 후자가 가능성이 더 크다. 




남자들은 무의식적으로 번식 상대를 찾는다. 그 대표적인 행동이 지나가는 여자를 보거나, 야동을 보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예외도 있어서 이후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